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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번 달아보고 싶었어요. 이 번호랑 인연도 많죠."
선수보다는 코치 쪽에 무게중심이 있었기에 코치들이 쓰는 높은 번호대에서 고를 수밖에 없었다. 올시즌 조웅천 SK 코치(813경기)의 투수 역대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넘어설 때도 그의 등에는 90번이 적혀 있었다.
류택현에게 14번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야구공을 처음 잡은 초등학교 5학년, 만화로 본 '독고탁'의 등번호를 그대로 달았다. 그때만 해도 만화로 접한 야구가 평생의 업이 될 줄 몰랐다. 그렇게 그는 고교 시절까지 14번을 단 한번도 놓지 않았다.
하지만 14번은 동국대 재학 시절부터 멀어졌다. 선후배 문화가 엄격한 상황에서 1년 선배의 번호를 쓸 수는 없었다. 자유의 몸이 된 4학년, 류택현은 21번을 선택했다. 21번은 당시 투수들에게 최고의 인기 넘버였다. OB에서 뛰던 박철순의 번호로 유명했던 21번은 에이스의 상징이었다.
이후 14번은 류택현과 인연이 없었다. OB 시절에도 이미 14번의 주인이 있었고, 99년 LG로 이적한 뒤에도 심재학이 14번을 달았다. 하지만 그 해 말 심재학이 현대로 트레이드됐고, 2000년부터 다시 14번을 되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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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택현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1년간 14번을 지켰다. 그리고 2013년 다시 14번을 되찾았다. 과거 팀에서 '단명'하는 번호의 상징이었던 14번이 '장수 넘버' 소리를 들어 기분이 좋았다고. 게다가 류택현이 역대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새로 쓰던 경기도 814번째 경기였다. 괜한 의미 부여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류택현은 "사실 등번호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복귀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번호가 비어서 달았을 뿐"이라며 웃었다. 2년간 14번을 달았던 내야수 김재율은 경찰야구단에 입대했다. 조카 뻘인 후배의 번호를 뺏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달아보고 싶었어요." 그는 대화 내내 유독 '마지막'이란 말을 많이 썼다. 내년이면 류택현은 프로 20년차 선수가 된다. 나이는 만으로 마흔둘이다.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역사를 쓰고 있지만, 그 수치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구리구장에 나가 가볍게 몸을 풀고 온 그다. 하루라도 운동을 거르면 이상할 정도의 '운동 벌레'다. 2013 시즌엔 보다 선수에 가깝게 활동한다. 코치의 짐을 덜어 운동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제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환하게 밝히고 가는 일만 남았다. "처음 시작할 때 단 번호로 끝을 맺을 수 있겠네요."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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