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실종 강정호,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인가

    기사입력 2012-08-23 10:46:21 | 최종수정 2012-08-23 21:09:42

    8월 5일 목동 넥센-LG전. 강정호가 4회말 헛스윙 삼진을 당하며 넘어지고 있다.
    목동=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요즘 프로야구계의 '연구대상'이 있다. 시즌 초반 미친듯이 홈런을 쏟아내더니,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침묵에 빠졌다.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25) 이야기다.

    강정호가 지난 6월 16일 시즌 19홈런을 터트렸을 때, 야구 관계자 대다수는 30홈런, 40홈런을 말했고, 팬들은 만년 하위팀 히어로즈의 선전과 함께 새로운 홈런타자 등장에 환호했다. 6월 16일까지 56경기에서 홈런 19개(1위), 타율 3할5푼1리에 51개(1위)의 타점을 쓸어담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강정호는 4월 16경기에서 7개의 홈런을 터트린데 이어 5월 27경기에서 7개, 6월 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09년 자신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23개)을 가볍게 넘어설 것 같았다. 더구나 수비부담이 큰 유격수여서 더 돋보였다. 뛰어난 클러치 능력과 함께 메이저리그 홈런타자를 연상시키는 호쾌한 스윙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런데 그때부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19홈런 이후 8월 23일 잠실 두산전까지 무려 68일째 홈런이 없다. 이 기간 동안 38경기에 출전한 강정호는 타율 2할5푼, 14타점에 그쳤다. 특히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후반기 23경기만을 떼놓고 보면 부진이 얼마나 깊은지 확실히 드러난다. 타율 2할5리(83타수 17안타)에 7타점이다.

    양상문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지금까지 강정호처럼 저렇게 홈런을 때리다가 갑자기 부진에 빠지는 타자는 못 봤다.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도 두 달 이면 최소 1~2개는 터졌어야 했다"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양준혁 SBS 해설위원도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미스터리한 경우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흥식 넥센 타격코치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 코치는 "1999년 이승엽이 타격폼이 흐트러져 한 달 정도 홈런을 때리지 못한 적이 있었지만, 강정호처럼 홈런을 펑펑 치다가 이토록 장기간 홈런을 때리지 못하는 경우는 못 본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정호는 왜 68일이나 홈런 구경을 못한 걸까. 혹시 타격 메커니즘의 문제 외에 다른 요인이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8월 5일 열린 목동 넥센-LG전. 넥센 강정호가 덕아웃에서 물끄러미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목동=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타자판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인가

    강정호는 시즌 19호 홈런을 때린 직후인 6월 말 오른쪽 다리 봉와직염으로 10일 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다. 7월 초 복귀한 후 7월 한 달 간 홈런은 없었지만, 타율 3할2푼8리로 비교적 좋은 타격감을 이어갔다. 그러나 홈런 치는 법을 잊어버린 5번타자로 인해 최강으로 꼽혔던 히어로즈 클린업 트리오는 파괴력을 잃었다. 넥센 코칭스태프는 이 기간에 홈런 1위로 치고 나간 4번 박병호 뒤라는 부담감을 덜어주고,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5번 타자 강정호를 몇차례 3번에 올렸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쯤되면 타격에도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이란 원래 투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에서 활약했던 투수 스티브 블레스가 갑자기 제구력 난조에 빠져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면서 비롯된 용어다. 좋은 활약을 하던 선수가 갑자기 극단적인 심리적 부담에 짓눌려 늘 하던 익숙한 동작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골프에서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입스(Yips) 증후군이 있다. 입스 증후군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돌발적 근육 경련 현상을 뜻하는데, 퍼트를 할 때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손이 떨리는 현상이다.

    강정호 또한 이런 케이스로 보인다. 홈런을 쳐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심리적인 안정이 깨져 홈런을 때리는 리듬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다. 박흥식 코치는 "언제부터인가 타격 때 몸과 배트가 함께 나가면서 밸런스가 무너져 공을 받쳐놓고 치지 못하고 있다"고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아무리 밸런스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대형타자가 두달 넘게 홈런을 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8월 3일 목동 LG전에 앞서 넥센 강정호가 번트 훈련을 하는 선수 옆에서 튀어나오는 공을 치고 있다. 목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내성적 성격도 한몫 했다

    박흥식 코치 또한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시즌 최다 홈런이 2009년 23개인 강정호는 2010년 12개, 지난해 9개로 감소했다. 특히 주로 4번 타자를 맡았던 지난 시즌 중심타자로서 극심한 중압감에 시달리며 슬럼프에 빠졌다. 이런 면을 볼 때 스트레스에 민감한 유형의 선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알고 있는 김시진 감독은 강정호를 개막전부터 줄곧 5번 타자로 썼다. 전반기 맹활약을 펼친 강정호는 인터뷰 때마다 "3,4번에 (이)택근이 형, (박)병호형이 버티고 있어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어 홈런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흥식 코치는 강정호를 두고 박병호 처럼 전형적인 홈런타자가 아니라 중장거리 타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손목힘이 좋고 배트에 힘을 실어 공을 때리는 컨택트 능력이 좋아 전반기 홈런을 양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전반기 19개 홈런에 강정호 자신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덩달아 주위의 기대감도 커졌고, 홈런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점을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체력적인 어려움이 찾아왔고, 피로 누적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봉와직염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열흘 간의 공백은 강정호의 타격감을 흔들어 놓았다. 홈런을 때려야 한다는 중압감, 홈런을 때리지 못했을 때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강정호로부터 홈런을 앗아갔다.

    외향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 중 어떤 유형이 야수선수로서 유리할까. 보통 외향적인 선수는 부담감을 비교적 쉽게 털어내고, 코치와의 소통에 유리하다. 반면 내성적인 선수는 치밀하고 꼼꼼하게 상대를 분석해 위기를 헤쳐나간다. 강정호는 내성적인 성격에 가깝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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