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우의 은퇴 선언 "떠나야 할 때…후배들이 내 기록 넘어서길"
"좋은 지도자로, 후배들과 국제대회 출전하는 꿈 꾼다"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은퇴 결심'이 외부에 알려진 16일, 박철우(38)는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은퇴를 결심한 건 며칠 전이지만 그래도 현역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날을 그냥 보낼 수가 없더라"며 "술 한잔하면서 지난 시간을 떠올려봤다"고 말했다.
한국 남자배구의 전설적인 왼손 공격수 박철우가 코트를 떠났다.
박철우는 "2023-2024시즌을 치르면서 은퇴 시점을 고민하고 있었다"며 "이제 때가 됐다. 한국전력 구단에서 2024-2025시즌 연봉 계약 대상자에서 제외했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지만, 이제 정말 떠날 때라고 생각했다"고 '공식 은퇴 선언'을 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03년 10월 실업팀 선수에 이어 (2005년부터) 20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하며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선수로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고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기도 했다.
박철우는 김호철 현 IBK기업은행 감독, 장인이자 스승인 신치용 전 감독, 임도헌·신진식·장병철 전 감독과 권영민 현 한국전력 감독 등 프로에서 만난 지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워서 다시 배구 코트에서 만나 뵙겠다. 배구선수 박철우,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라고 썼다.
박철우는 "다시 읽어보면,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글에 술기운이 묻어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그동안 함께 뛴 동료, 코칭스태프, 그리고 응원해주신 팬들 덕에 지금까지 코트에 설 수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 인사를 드리겠다"고 밝혔다.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아내 신혜인 씨와 '명장' 신치용 전 감독도 박철우의 선택을 지지했다.
박철우는 "내가 오랫동안 선수로 뛰길 바랐던 아내가 이번에는 '지금이 은퇴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하더라. 장인어른께서도 '이제 지도자를 준비하는 게 어떤가'라고 조언하셨다"며 "나를 가장 잘 아는 가족의 조언에 더 미련 없이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철우는 한국프로배구 V리그 원년 멤버다.
현대캐피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화재, 한국전력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2023-2024시즌까지 19시즌 동안 코트를 누볐다.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인 그는 564경기에 출전해 6천623득점, 공격 성공률 52.13%를 기록했다.
박철우는 V리그 최다 득점 1위다. 공격 득점(5천603개)도 V리그 1위다.
2008-2009시즌에는 V리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도 올랐다.
우승 반지는 7개나 소유했다.
미들 블로커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코트를 지켰던 박철우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박철우가 우리 팀과 한국 배구에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위해 박철우와 결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철우는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팀에 쓸모가 있을 때까지 뛴다. 팀에 부담이 되면 미련 없이 떠난다'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전력 구단에서 '재계약이 어렵다'고 말했을 때도 '그동안 감사했다'라고 답했다. 최선을 다했고, 구단에서도 내게 충분히 기회를 줬기에, 미련은 없다"고 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철우가 떠나도 기록은 남는다.
V리그 남자부 통산 득점 2위는 외국인 공격수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다. 레오는 5천979점을 올렸다.
국내 선수 득점 2위는 4천808점의 문성민(현대캐피탈)이다.
2024년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현대캐피탈에 지명된 레오가 2024-2025시즌에 박철우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은 크지만, '국내 선수 1위' 기록은 오랫동안 박철우가 유지할 전망이다.
또한, V리그 첫 '6천 득점 달성'이라는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박철우는 "작게나마 V리그에 흔적을 남겨 기쁘다"고 겸손하게 말하며 "후배들이 꼭 내 기록을 넘어섰으면 좋겠다. 나는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으니, 후배들이 더 좋은 기록을 만들어 한국 배구를 빛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박철우의 주 포지션은 아포짓 스파이커였다.
V리그에서 주로 외국인 선수가 맡는 자리다.
힘겨운 경쟁 속에서 버티고도 박철우는 "외국인 선수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팬들이, 내가 만족할 수준의 공격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며 "국제대회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건 배구 팬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안주하지 않는 박철우의 성격이 '롱런'의 비결이었다.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한 박철우는 후배들에게도 미안함을 표했다.
박철우는 "최근 우리 남자배구가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나는 기분"이라며 "좋은 분위기에서 태극마크를 물려주지 못해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한국 남자배구에 젊고 좋은 선수들이 많다. 지금은 힘겨운 시기지만, 한국 남자배구가 다시 국제 경쟁력을 갖출 시기가 올 것"이라고 응원했다.
박철우는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새 출발 한다.
하지만, 지도자로 코트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잊지 않았다.
박철우는 "은퇴가 다가올 때부터 배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며 "열심히 방송을 준비하면서 시야를 더 넓혀, 지도자로 다시 코트에 서고 싶다"고 했다.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반등의 순간'을 지도자로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박철우는 "좋은 지도자가 되어서 후배들과 함께 국제무대에 출전하는 꿈을 꾼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정말 좋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력'은 박철우가 현역 시절에 가장 자신 있어 한 분야다.
jiks79@yna.co.kr
<연합뉴스>
2024-05-17 0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