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은행원에서 장애인 역도 선수로…꿈의 무대 밟은 김규호
만 4살 때 버스 교통사고…공부와 운동 매진해 우리은행 입사
꿈 위해 은행 사직 후 패럴림픽 도전…"응원해준 아내와 세 아이를 위해 뛸 것"
(파리=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장애인 역도의 간판 김규호(43·평택시청)가 오른쪽 다리를 잃은 건 만 4살 때인 1985년의 일이다.
그는 버스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김규호는 "사고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이 많이 슬퍼하신 것은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한쪽 다리가 사라졌지만, 김규호는 꿈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
공부와 운동,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했지만, 나중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김규호는 2012년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우리은행에 입행하기도 했다.
수인업무센터 금융정보팀 등에서 일했다.
풍족한 삶이었다. 아내 김은주씨를 만나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그러나 김규호의 가슴 한구석엔 꿈을 향한 열망이 있었다.
2009년 장애인 조정 선수로 활동했던 김규호는 2013년 역도 선수로 전향했다.
은행 업무와 역도 선수를 병행했던 김규호는 2020 도쿄 올림픽 직후인 2021년 10월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2024 파리 패럴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선 많은 국제대회에 나가 출전 포인트를 쌓아야 하는데, 은행 업무와 병행할 수 없었다"며 "결단을 내려야 했다"고 밝혔다.
가족들과 은행 직원들은 김규호를 만류했다.
그러나 김규호는 꿈을 향해 은행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2022년 실업팀 평택시청에 입단한 김규호는 이를 악물고 꿈을 향해 전진했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자 실력은 급상승했다.
2023년엔 장애인 역도 '꿈의 기록'인 200㎏을 돌파했다.
국내에서 체중 100㎏ 이하의 장애인 선수가 200㎏를 든 건 역대 네 번째 기록이었다.
지난해 두바이 장애인파워리프팅월드컵에선 5위를 기록했고, 꿈에 그리던 파리 패럴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처음엔 선수 활동을 반대했던 아내와 세 자녀는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아내는 패럴림픽 경기를 앞둔 김규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내는 "당신의 마음속엔, 뼛속까지 열정이 있어. 난 그 옆에서 17년 동안 (당신의 열정을) 봐왔고, (이젠) 어떤 열매라도 뜻깊고 의미가 있을 거야. 난 여기서 (당신을) 응원하고 지지할게"라고 전했다.
김규호는 7일(한국시간) 꿈에 그리던 패럴림픽 무대를 밟았다.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역도(파워리프팅) 남자 80㎏급에 출전했다.
그는 1차 시기에서 202㎏을 신청해 쉽게 들어 올렸다. 개인 최고 기록을 1차 시기에서 돌파했다.
2차 시기에선 5㎏을 더한 207㎏을 신청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게였다.
아슬아슬하게 실패했다.
2차 시기까지 성적은 4위. 3위는 215㎏을 든 라술 모흐신(이라크)이었다.
김규호는 승부수를 띄웠다. 3차 시기에서 216㎏을 신청했다.
김규호는 "216㎏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던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역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팔꿈치를 모두 펴지 못했다.
김규호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는 당당히 세계 무대에 도전했고, 꿈의 무대를 밟아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김규호는 "오늘 컨디션이 매우 좋았기에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216㎏을 신청했다"며 "아직은 내가 부족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 김규호의 휴대전화엔 아내의 메시지가 울렸다.
"잘했다. 우리 김규호! 당신의 패기 너무 멋졌어!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김규호는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아들 김탄, 3학년 딸 김수아, 1학년 아들 김찬 모두 안 자고 응원한다고 했다"며 "항상 묵묵히 뒤에서 응원해준 아내와 세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라며 "곧 220㎏을 돌파하고, 다음 패럴림픽에선 꼭 시상대에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cycle@yna.co.kr
<연합뉴스>
2024-09-07 17: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