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구자철의 구자철다운 직언 "일본 축구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격차…축구계 리더가 변화 두려워하면 후배들 더 큰 고통 받는다"
지난 30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제주와 수원FC전을 마치고 선수 은퇴 소감을 말하던 구자철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현역 마지막 인터뷰에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구자철은 "예전부터 한국 축구에 좋은 거라면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해왔다. 현역 선수들은 행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걸 모르지만, 은퇴해 보니 여러 행정 절차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운을 뗀 뒤, "그걸 이기는 건 결국 축구계의 리더다. 그 리더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시스템, 어떤 룰을 만드느냐에 따라 축구판이 바뀐다. 핑계는 없다. 바꿔야 하는 건 바꿔야 한다"라고 직언했다. 유럽 빅리그를 경험한 '절친 트리오' 구자철 기성용(서울) 이청용(울산)은 수년 전부터 K리그 잔디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더 좋은 환경을 갖춰야 좋은 선수가 배출되고, 팬들에게 더 좋은 축구를 선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와서야 잔디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 건 그만큼 우리가 평소 베테랑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1년간 대표팀에서 A매치 76경기(19골)를 뛴 구자철은 "내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의 차이)에 대한 체감과 지금은 달랐다. 그때도 다들 격차가 벌어질 거로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벌어졌다. 이젠 일본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라며 "그 책임과 그 시간은 누가 보상을 받나.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선수 생활을 할 때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면 후배들, 다음 세대에 더 큰 고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판을 좌우하는 리더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과감한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청소년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을 지낸 구자철은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의 변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제주 유스 어드바이저를 맡아 유소년 행정에 뛰어들었다. 구자철은 "(은퇴 후)다들 내가 노는 줄 알지만, 지난 석 달 동안 정말 바쁘게 살았다. 두 달 안으로 발표할 예정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축구팬들이 기대할 만한 일이다. 새벽 2시, 6시에 일어나 독일쪽과 줌 미팅을 했고, 직접 준비한 자료도 100개가 넘는다"라며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아직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 그 시스템과 철학을 섞어서 제주의 유소년 방향을 잡으려고 한다. 유소년은 성장을 기록해줘야 한다. 그 기록이 다 자산이다. 그런 것들을 직접 정리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일이 너무 재밌다. 내가 선수뿐 아니라 행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며 웃었다.
구자철은 2008년 제주에서 프로 데뷔해 볼프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 등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선수 황혼기로 접어든 2022년, 제주로 돌아와 세 시즌간 활약한 뒤 2024년말 축구화를 벗었다. 성대한 은퇴식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구자철은 "선수 구자철에게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18년 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볼프스부르크에서 너무 힘들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나서 밀려오는 허무함, 허망함 때문에 우울한 삶을 살았다"라며 "2007년 4월 15일 인천전에서 데뷔한 뒤 은퇴하는 순간까지 단 하루도 밤낮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제2의 축구인생에서도 선수 때만큼 열심히 노력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제주=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2025-03-31 20:3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