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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IOC위원'유승민의 고군분투 1년,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7-08-12 15:56 | 최종수정 2017-08-12 19:55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1일(한국시각)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IOC 위원은 유승민 위원 1명뿐이다.

유 위원은 지난해 8월 리우올림픽 현장에서 '하루 3만 보' 발로 뛰는 열정으로 모두가 안된다던 IOC위원의 길을 스스로 열었다. 2000년대 이후 올림픽에서 비중국인 선수로 유일하게 남자탁구 단식 금메달을 따낸 그가 또 한번의 기적을 썼다. 재능을 뛰어넘는 성실한 노력은 IOC위원 당선 이후에도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년간 IOC총회 및 관련 이벤트에 빼놓지 않고 참석하고, 국내외 체육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외교적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문제는 스포츠 외교의 유일한 통로가 된 유 위원의 활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다. 김 종 문체부 제2차관 당시 리우올림픽 선수위원에 도전한 유 위원은 심리적 응원도, 지원도 받지 못했다. 당시에도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체육계 관계자들의 암울한 전망과 이를 받아쓴 보도가 이어졌다. 유 위원은 이를 악물었다. 리우올림픽 현장에서 '절친' 주세혁과 선수촌 방을 나눠쓰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아무도 안된다던 일을 이뤄냈다.

이후 정권 교체로 혼란스러운 상황, 무관심은 계속됐다. 유 위원은 올해 초 삼성생명 코치직을 그만뒀다. 20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뤄준 일터에 사표를 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올림픽 챔피언 출신 IOC위원으로서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였다. 국제 무대를 오가는 IOC위원 활동을 하면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 일에 전념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IOC위원의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지난 연말 '최순실 국정농단 정국' 속에 대기업들이 지갑을 닫아버린 상황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첫 IOC선수위원을 역임한 '태권도 스타' 출신 문대성 전 새누리당 의원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평창올림픽 유치가 국가적 염원이었던 시기, 문 전 위원은 준비단계부터 전폭적인 국가적 응원을 받았다. 선수위원이 된 이후에도 정부는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2년 문 위원이 만든 외교부 산하 국제스포츠외교재단(ISR) 예산을 지원했다. 이 재단은 지난해 7월 국제스포츠협력센터(ISC)와 통합, 국제스포츠재단(ISR)이 됐다. 문 전 위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포츠 외교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단의 이사장이다. IOC 및 국제스포계의 최신 정보 및 동향을 파악해 공유하고, 스포츠인들의 협력 및 교육을 담당하는 이 재단에 2016년 한해동안 5억7000여만원의 예산이 지원됐다. 문 전 위원의 임기가 끝났고, 유승민 IOC위원이 당선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ISR의 이사장은 여전히 문 전 위원이다. 문 전 위원은 2012년 논문 표절 의혹 후 2014년 3월 박사학위를 박탈당했고, IOC위원 임기만료를 한달 앞둔 지난해 6월 IOC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ISR은 '스포츠의 국제협력을 도모,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 국제 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됐고, ISR의 예산은 IOC선수위원의 활동 및 정보 공유, 스포츠 외교 활성화를 위해 책정된 '국가예산'이다. 일각에선 '형평성'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ISR과 이곳에 배정된 예산은 '현직' IOC위원에게 승계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 위원의 8년 임기가 만료되는 2024년 이후 또다른 선수위원 '후배'가 나올 경우, 이 조직을 그대로 승계하면 된다. 국가적 관리속에 IOC는 물론 국제 스포츠계 정보 및 네트워크, 데이터, 노하우가 축적된다.

유 위원이 활동중인 IOC 안투라지, 선수 교육 프로그램과의 연계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유 위원은 올림픽 멤버인 만큼 IOC 현장의 모든 고급정보를 가장 먼저 접한다. IOC위원들은 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소통한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도 지난 1년간 수차례 식사 자리를 갖고 친분을 쌓았다. 유창한 영어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자유로이 소통하며, IOC 내 젊고 적극적인 행정가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스포츠 외교에 필요한 소중한 정보들을 SNS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조직과 시스템 없는 혼자만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 유 위원 개인의 능력과 정보력이 국가적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와 관계기관의 무관심속에 유 위원은 1년전처럼 자신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다. 영어 어학 연수, 적극적인 행보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평창조직위 역시 유 위원의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IOC와의 관계나 스포츠 외교력을 발휘함에 있어 유 위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올해 평창에서 진행된 일련의 행사에서 IOC위원에 대한 예우는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자리배정, 내빈소개에서 유 위원은 체육계 인사, 지역 인사, 동계 스포츠스타 다음이었다. 문제점을 지적하자 유 위원은 "내게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된다. 자리는 중요치 않다"라면서도 "외국에 가보면 IOC위원에 대한 예우는 특별하다. 가족석까지 미리 준비해둔다. 향후 평창을 찾을 동료 IOC위원들에게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지난달 24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펼쳐진 평창 G-200 행사, 문재인 대통령은 유 위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평창 동계 올림픽, 패럴림픽 성공 다짐대회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열정 릴레이' 캠페인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응원 메시지 릴레이입니다. 다른 3명에게 하나된 열정 릴레이를 연결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유승민 IOC위원 등 3명을 직접 지목했다. "제가 유 위원님 지목했습니다"라며 따뜻하게 손을 맞잡았다. 평창올림픽 현장에서 유일한 IOC위원인 유 위원의 위상을 인정하고, 존중을 표했다.

체육계에선 이 회장의 IOC 위원직 사퇴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올림픽 파트너, 대기업 삼성의 총수인 이 회장의 사퇴가 안타깝다. 국가적 대사인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1명의 IOC위원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나밖에 없는 IOC위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IOC위원이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새로운 IOC위원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유일한 IOC위원이 스포츠 무대에서 힘을 받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시스템을 갖춰주는 일도 시급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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