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체육대상 수상자를 만나다] '특수체육의 편곡자' 전북맹아학교 정문수 교장의 열정,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더 많은 성공 경험을 쌓도록!"
'학교에서 배운 체육, 인생의 버팀목이 된다'. 학교체육에 대한 선생님의 헌신과 학생들의 열정이 어우러지면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장애·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운 체육시간, 체력을 기르며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진정한 학교체육의 참모습이다.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이 주최하고, 스포츠조선과 학교체육진흥회가 주관하는 '2024 학교체육대상'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어 스포츠조선은 학교체육진흥회와 함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각 분야 대상의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이들이 펼쳐나가는 특별한 체육교육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편집자주>
[익산=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옷깃만 스쳐도 까르르 웃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 (한)재경이는 지난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시각장애인테니스선수권에 다녀온 뒤 전북맹아학교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온 재경이에게 '이탈리아는 어때? 무슨 음식이 맛있어?'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재경이의 반응은 퍽 '시크'하다. "이탈리아 피자 별로였어요. 한국 OOO 피자가 최고라니까요!." 다음 답변에는 시크 한 스푼에 진지함 한 스푼을 더했다. 해외 원정 대회에 참가한 소감에 관한 질문에 "어쩌다 가게 됐어요. 해외여행차 놀다 온거죠 뭐.(웃음) 8강에서 아쉽게 졌는데,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 같아요. 백핸드를 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더위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하던 10월말, 재경이와 인터뷰를 나눈 곳은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전북맹아학교 체육관. 정문수 교장을 필두로 학생들이 재경이 성격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특수체육을 익히고 있었다. 체육관 곳곳에는 특수체육과 관련된 다양한 운동 기구가 놓여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기구는 바로 쇼다운이었다. 쇼다운은 두 명의 선수가 눈을 가린 채 테이블 양 끝에 서서 공을 배트로 쳐 상대의 골 주머니에 넣는 테이블 하키와 유사한 종목이다.
정문수 교장은 "세계 시각장애인 스포츠를 통해 쇼다운 종목을 접한 뒤 우리 아이들에게도 빨리 가르쳐봐야겠다는 생각에 장비를 구입했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의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스포츠 등급이 나뉘는데, 쇼다운은 여러 단계의 시각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동일하게 고글을 끼고 시합에 임한다"고 말했다. 2학년 (조)윤아는 "눈이 보였을 때는 접하지 못했던 스포츠다. 단체전에서 같이 골을 넣을 때 기쁨을 느낀다. 예전엔 운동 부족이었는데, 체육을 하면서 성격도 활발해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학교장배 쇼다운대회엔 전교생이 참여한다.
정 교장의 머릿 속은 이렇듯 어떻게하면 학생들에게 새로운 종목을 알려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까로 가득 차 있다. 정 교장은 초등학생 시절 배구 선수를 지내며 스포츠가 주는 마법같은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 스포츠를 통해 신체 한계를 극복하고, 팀 플레이를 익히며 사회 일꾼이 되는 스텝을 밟아가길 바라고 있다. 정 교장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 결과에 승복하는 경험은 스포츠를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도 철학은 확실하다. 정 교장은 "일단 즐거워야 한다. 학생들이 다른 종목을 해보고 싶어한다면, 종목을 바로 바꾼다. 재미가 기반이 되지 않은, 억지로 하는 스포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북맹아학교는 장애 맞춤형 체육교육, 학생의 희망대로 종목을 선정한다. 다양한 뉴스포츠 수업(티볼, 컬링, 한궁, 슐런, 쇼다운)을 진행한다. 체육 수업에선 종목의 변형과 룰의 변형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존 음악을 다시 편곡한다는 생각으로 구조화를 바꿔주는 식이다. 티볼 경기를 할 때, 보통은 야구공만한 공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소리 나는 배구공을 사용한다. 학생들이 스윙을 할 때 '안 맞으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지워 성공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북맹아학교 학생들은 가끔 금강변에서 탠덤사이클을 타기도 한다. 강바람을 경험하고, 신체 능력도 키우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특수 체육에 진심인 정 교장과 체육교사의 열정과 스포츠에 푹 빠진 학생들의 높은 참여도 덕에 전북맹아학교는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총 147개(금 51개, 은 59개, 동 37개)를 수확하고, 시각장애인테니스 대회와 전북장애학생체전 쇼다운 종목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재경이를 비롯한 전북맹아학교 학생 2명은 한국 대표로 세계시각장애인테니스선수권을 위해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정 교장은 "이탈리아 피자가 너무 짜다고 느낀 것 또한 중요한 경험이다. 이 체육관에서 시작된 작은 테니스 활동이 이렇게 나비 효과처럼 증폭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걸 학생들이 알게 됐을 것이다. 훗날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대회에서 메달을 딴 사람인데'라는 자존감은 어떤 영양제보다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전북맹아학교의 사례와 운영 방법을 전국의 다른 학교와 공유해 특수체육교육의 활성화에 기여한 노력으로 교육부가 주최하고 학교체육진흥회와 스포츠조선이 주관하는 '2024 학교체육대상' 시상식에서 특수체육교육 활성화 분야, 특수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정 교장은 "특수학교에 와보니 이곳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 학교보다 몇 배는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면서 "우리 학교의 사례를 널리 알려서 장애 학생들이 체육을 더 많이 접하는 환경에 놓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익산=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2024-11-19 12: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