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선수권]김한원-박종찬, 눈물과 아쉬움 딛고 일어선 우승 주역

    기사입력 2012-06-13 17:06:00

    박종찬(왼쪽)과 김한원이 2012년 우리은행 내셔널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브이를 그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실업축구연맹

    김한원과 박종찬. 수원시청의 공격을 이끌고 있는 1981년생 동갑내기 투톱은 내셔널리그 선수들의 전형이다. 설움과 아쉬움이 큰 길을 걸었다. 바로 눈물과 아쉬움으로 가득찬 길이었다.

    김한원은 2002년 세경대를 졸업한 뒤 갈 곳이 없었다. 고민하던 김한원은 해병대에 입대했다. 2002년 당시 해병대는 월드컵 후 축구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군 축구팀 창단 계획을 발표했다. 김한원은 해병대 축구팀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해병대 창단 계획은 백지화됐다. 김한원은 일반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04년 전역한 김한원은 수원시청에 입단했다. 이듬해인 2005년 내셔널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006년 인천유나이티드로 입단한 뒤 15경기에 나서 3골-1도움을 올렸다. 2007년 전북으로 둥지를 옮겼다. 하지만 힘든 시간이었다. 2년간 14경기에 나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2009년 수원시청으로 돌아왔다.

    박종찬도 2005년 인천에 입단했다. 친형인 박종우와 함께 형제 K-리거로 주목받았다. 박종우는 2002년 전남에 입단한 뒤 광주상무와 경남을 거쳐 2009년 은퇴했다. K-리그 통산 199경기에 나와 9골-17도움을 올렸다. 하지만 박종찬은 형의 전철을 밟지 못했다. 1군 경기에서는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인천 2군에서 한솥밥을 먹은 입단동기 이근호(현 울산)가 K-리그 2군리그 MVP를 차지하던 2006년, 박종찬은 K-리그 무대를 쓸쓸히 떠났다. 곧바로 홍천이두FC에 입단한 박종찬은 2007년 수원시청에 둥지를 틀었다. 2009년 김한원이 들어오면서 둘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2010년 수원시청의 내셔널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서른줄을 넘겼지만 둘의 공격력은 여전하다. 리그에서 수원시청은 둘의 활약에 힘입어 14개팀 가운데 4위를 달리고 있다. 노련미를 갖춘 둘은 12일 강원도 양구에서 끝난 2012년 우리은핸 내셔널선수권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울산현대미포조선과의 결승전에서 박종찬은 전반 19분 선제골을 기록했다. 2분 뒤 김한원은 날카로운 코너킥으로 김종성의 쐐기골을 이끌어냈다. 2004년과 2007년 이대회 정상에 섰던 수원시청은 5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아왔다. 통산 3회 우승으로 내셔널선수권대회 역대 최다우승 기록을 세웠다.

    현역 생활이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은 둘에게도 목표가 있다. 박종찬은 "아직 전국체전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7월부터 전국체전 예선이 시작되는데 올해는 본선까지 올라가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김한원은 K-리그를 말했다. 그는 김한원은 "남아있는 현역 기간동안 FA컵 등에서 K-리그 팀을 만난다면 한 번 꺾어 보고 싶다. 또 승강제 등을 통해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한번 K-리그 무대를 밟고 싶다"고 말했다.
    양구=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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