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이른바 '3S(sports, screen, sex) 정책'이라고 해서 국민들을 정치적 무관심으로 유도하기 위한 우민화 수단으로 스포츠가 활용된 적이 있다.
이같은 정치사적 우울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감히 '3S'를 떠올리기는 커녕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됐다.
하지만 제18대 대선이 다가오는 요즘 정치때문에 이래저래 곤혹스러운 스포츠가 있다. 프로야구다. 올시즌 700만 관중 시대를 열어젖힐 만큼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기 절정기인 가을야구 시즌이다. 이 때문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너무 높은 인기로 인해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다.
대선 주자 시구? NO!
최근 정치판에서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화제에 올랐다. 주요 대선 후보 캠프가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한국시리즈에서 시구자로 나서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거론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지난 15일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경우 안철수 후보와 함께 공동 시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게 발단이었다. 이튿날 안철수 후보측에서는 문 후보와의 공동시구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롯데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캠프 내에서 나오고 있어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말이 나왔다. 새누리당 측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어느 한쪽을 편드는 모양새를 우려하면서도 문재인, 안철수 후보 진영이 시구자로 나서는 것은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시리즈를 지역구도와 결부시켜 대선 판도를 전망하는 시각까지 등장했다. 박 후보가 TK(대구-경북)를 문, 안 후보가 PK(부산-경남)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이 대구를 연고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감추지 못했다. 순수 스포츠인 프로야구를 왜 정치판 논리에 자꾸 끌어들이냐는 것이다. KBO 관계자는 "해마다 열리는 한국시리즈를 5년 만에 맞은 대선 정국과 연결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야구는 야구로만 봐주길 바란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시구 문제에 대해 사전에 선을 긋고 나섰다. 대선 주자를 포함, 정치인은 한국시리즈 시구자로 초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대선 주자가 3명이지만 실제 대선 출마 예정자는 더 많은데 대선 주자 모두를 시구자로 초청할 수 없고, 3명에게만 시구 기회를 주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KBO는 "대선 주자들이 단순히 야구를 구경하러 온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 그렇다고 관중에게 소개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시구자를 섭외중인 KBO는 추신수(클리블랜드) 등 야구인과 사회공헌자, 연예인 가운데 시구자를 선정하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제10구단 승인은 어쩌나…
대선 주자의 한국시리즈 시구 문제는 이렇게 정리됐다고 치자. 그렇다고 KBO의 대선 정국 고민이 일소된 것은 아니다. 제10구단 창단 문제가 대선 정국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KBO는 다음달 초 이사회를 열어 10구단 창단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지난 7월 10구단 승인을 요구하며 올스타전 보이콧을 선언한 프로야구선수협회를 설득하면서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10구단 승인 여부를 논의하는 등 연내 10구단 창단 승인을 마무리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구단 창단에 공개적으로 나선 지역이 전북과 수원이라는 사실이 KBO를 곤혹스럽게 한다. 전북은 민주통합당의 텃밭이다. 수원을 포함한 경기도는 지난 4월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등 야당이 압승을 거둔 지역이지만 2007년 제17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완승을 거뒀던 선거 전략지다. 오는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이전에 전북과 수원 중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경우 KBO의 의지와 관계없이 표심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선수협과의 약속 때문에 10구단 논의를 무작정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10구단 승인 여부만 결정한 뒤 연고지-창단기업 선정은 대선 이후로 늦추자는 방안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안도 깔끔한 게 아니다. 연고지는 비워둔 채 10구단 창단만 승인하면 대선 주자들이 지역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연고지 유치 공약을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협도 KBO를 신임하기로 한 만큼 창단 논의 자체를 대선 이후로 자연스럽게 연기해도 큰 문제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KBO 고위 관계자는 "10구단은 워낙 민감해서 여러가지 변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사회에서 신중하게 논의해봐야 한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한편, KBO는 10구단 창단기업-연고지 선정과 관련, 잡음을 차단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 언론계 대표 등 광범위 자문단을 꾸려 엄정한 심사를 거치기로 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