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람 "행복한 투수였다…부진할 때도 응원해준 팬들께 감사"
플레잉코치로 뛰던 정우람 '완전한 은퇴' 결정
"내 기준 넘지 못하면 1군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플레잉코치로 뛰며 한 시즌 동안 '유예 기간'을 뒀지만, 마운드와의 작별이 여전히 쉽지는 않다.
한국프로야구 투수 중 가장 많은 1천4경기에 등판했으니, 그만큼 떠오르는 추억도 많다.
정우람(39·한화 이글스)은 1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난 시즌을 치르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올해 플레잉코치로 일하면서도 '1군에서 던지고 싶은 내 욕심을 앞세우지 말자. 내가 세운 기준을 넘어설 정도가 아니면 1군 등판을 욕심내지 말자'라고 생각했다"며 "은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구단의 공식 발표가 나오니 여러 감정이 섞이더라"라고 말했다.
이날 한화는 "정우람이 21년의 화려한 프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며 "올 시즌 남은 홈 경기 중 한 경기에서 정우람의 은퇴식을 개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우람은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건 아쉽지만, 나는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는데 은퇴식까지 열어준다고 하시니 정말 영광"이라고 몸을 낮췄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정우람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왼손 불펜이었다.
정우람은 KBO리그 투수 최다이자, 단일리그 기준 아시아 투수 최다 기록인 1천4경기에 출전했다.
1군 통산 기록은 977⅓이닝 64승 47패 197세이브 145홀드, 평균자책점 3.18이다.
세이브는 KBO리그 통산 6위, 홀드는 4위다.
KBO리그에서 100세이브-100홀드를 달성한 건 정우람과 정대현(106세이브-121홀드) 현 삼성 라이온즈 코치, 단 두 명뿐이다.
2004년 2차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 지명돼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정우람은 15시즌이나 50경기 이상을 던졌다.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성적을 낸 '철완' 정우람은 지난해 10월 2일 대전 NC 다이노스전에서는 KBO리그 투수 최초로 1천경기 출장의 대기록을 세웠고 10월 15일 대전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단일리그 투수 기준 아시아 최다경기 출장 신기록(1천3경기)을 수립했다.
1군에서 활약할 때는 개인 기록에는 무심했던 정우람도 "은퇴를 앞두고 보니 200세이브를 채우지 못한 게 아쉽긴 하다"고 웃었다.
하지만, 200세이브를 채우지 못했어도 정우람은 오랜 시간 최정상급 불펜으로 활약한 투수로 인정받고 있다.
정우람은 "가족들이 내가 야구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줬다. 정말 고맙다"고 운을 뗀 뒤 "한화와 SK에서 좋은 지도자, 동료들을 만났다. 무엇보다 내가 부진할 때도 나를 응원해주신 팬들이 있었다. 정말 나는 운이 좋고, 행복한 투수였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
한국 야구의 역사에 남을 왼손 불펜 투수인 정우람은 지난 시즌 종료 후 구단의 플레잉코치 제안을 받아들여 올 시즌 1군 등판 없이 잔류군 투수코치로 후배들을 지도하는 데 주력했고, 최근 '완전한 은퇴'를 결심했다.
성실하고 생각이 깊은 정우람은 플레잉코치로 일하면서 '코치'에 무게를 더 뒀다.
시즌 중에 정우람은 "지금 나는 후배들의 성장을 도와야 하는 자리에 있다. '투수 정우람'을 위해 과욕을 부리지 않겠다"고 1군에 서는 상상을 꾹 눌렀다.
'투수 정우람'을 위한 훈련은 코치로서의 역할을 다한 뒤, 개인 시간을 쪼개서 했다.
팀이 정규시즌 10경기를 남긴 상황에서도 정우람은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정우람은 "나부터 나의 구위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내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1군에서 던지는 건, 나부터 용납할 수 없었다"고 '정우람답게' 말했다.
코치로 지낸 7개월도 보람찼다.
정우람은 "플레잉코치로 후배들과 지내는 시간이 무척 즐겁다. 나도 후배들에게 많이 배운다"며 "감독님, 코치님들이 헌신하며 코칭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됐다. 후배들이 성장하는 걸 봤을 때 느끼는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떠올렸다.
하지만, 정우람은 "내년에도 코치로 뛸지는 알 수 없다. 구단, 가족과 대화를 나눠봐야 한다"며 "올해 플레잉코치로 뛰면서 즐거웠지만, 동시에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여러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남은 기간에도 정우람은 후배들의 성장을 돕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그래도 팬들은 은퇴식에서 정우람이 마운드에 올라 '실전 투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문서상 현역 선수인 정우람은 언제든 1군 엔트리에 등록될 수 있다. 은퇴식을 위한 특별 엔트리로 등록해도, 실전 등판에 문제가 없다.
신중하고 성실한 정우람은 "혹시라도 은퇴식에서 등판할 수 있으니, 열심히 준비하겠다. 등판하지 못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열심히 준비하는 게 내가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정우람은 언제라도 등판할 수 있게 준비했고, 그렇게 1천4경기에 등판했다.
혹시 모를 1천5번째 등판을 위해 정우람은 개인 시간을 쪼개 다시 몸을 만든다.
팬과 동료, 프런트가 모두 정우람을 사랑하는 이유다.
jiks79@yna.co.kr
<연합뉴스>
2024-09-16 08: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