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포커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악몽으로 끝난 PIT 배지환의 첫 경기, 개막 3경기 만에 선발출격→4타수 무안타, 삼진만 3개. 마이너행 적신호 켜졌다.
[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화창한 봄날에 펼쳐진 악몽이었다.
기적적으로 2025시즌 메이저리그(MLB) 개막엔트리에 승선한 피츠버그 파이리츠 외야수 배지환이 시즌 첫 출전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팀의 리드오프 중책을 맡았음에도 네 번의 타석에서 단 한번도 출루하거나 진루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삼진은 3개나 당했다. 상대 투수들에게 철저히 농락당하며 아직은 메이저리그 레벨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뚜렷이 입증하고 말았다.
배지환은 30일 새벽 5시10분(이하 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2025 MLB 정규리그 원정경기에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올해 첫 MLB 경기출전이다. 이에 앞서 배지환은 28일 개막전과 29일 원정 2차전 때는 모두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데릭 쉘튼 피츠버그 감독은 이날 마이애미와의 원정 3차전 때 라인업을 일부 변경하며 배지환에게 출전기회를 줬다. 배지환과 함께 막판까지 개막 엔트리 경쟁을 펼치던 잭 스윈스키 역시 5번 우익수 선발로 처음 출전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배지환은 이날 타석에서 전혀 팀에 기여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기를 펼치고 말았다. 이날 7회까지 네 번 타석에 나왔지만, 결과는 4타수 무안타. 심지어 삼진을 3개나 당했다. 팀의 리드오프 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인 '출루'를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날 배지환은 타석에서 타자들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모습들만 골라 보여주고 말았다. 마이애미 투수들의 구위에 당한 게 아니라 노련한 수 싸움에 스스로 말려들었다. 한 마디로 배지환은 타석에서 철저히 상대 투수들에게 '농락'당했다고 볼 수 있다.
좋은 공을 그냥 보내고, 나쁜 공에 배트가 나가는 모습. 노림수 없이 투수들의 공에 끌려다니다 밸런스를 잃고, 자신만의 스윙 리듬도 유지하지 모습 등이 빠짐없이 나왔다. 당연히 공격 상황에 맞는 팀 타격도 할 수 없었다. 한 경기로 속단하긴 이른 감이 있지만, 아직은 메이저리그에서 경쟁할 준비가 덜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차례로 살펴보자.
먼저 1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첫 타석. 상대 선발은 우완 발렌틴 벨로조(25). 지난해 빅리그에 데뷔한 젊은 투수다. 지난해 13경기에 선발로만 나와 3승4패, 평균자책점 3.67을 찍었고, 올해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강속구보다는 제구력을 앞세운 유형의 변화구 투수라고 볼 수 있다. 패스트볼 최고구속이 91마일 미만이다. 커터와 슬라이더, 스위퍼 등은 70~80마일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배지환은 첫 타석부터 성급한 나머지 벨로조의 변화구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초구 90.2마일(시속 약 145㎞)짜리 포심 패스트볼은 볼. 2구째 85.1마일짜리 커터가 한복판 높은 코스로 들어왔는데, 여기에 헛스윙하고 말았다.
3구째 커터(85.9마일)는 몸쪽으로 제대로 붙어 각이 꺾였다. 쳐도 좋은 타구가 나오기 어려운 공이다. 볼카운트 1B1S로 여유가 있었지만, 배지환은 배트를 휘둘렀다. 정타가 되지 못한 타구는 3루 파울 지역 위로 떴다. 결국 3루수 파울플라이 아웃.
허무하게 첫 타석에서 파울 플라이로 물러난 배지환은 1-0으로 앞선 3회초 1사 후 두 번째 타석에 나왔다. 상대는 역시 벨로조. 이번에도 4구만에 승부가 났다.
초구 90마일짜리 포심은 몸쪽 낮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무릎 라인에 살짝 걸쳤다. 2구는 바깥쪽으로 완전히 벗어나는 커터. 배지환의 시야 범위를 흐트러트리기 위해 타석에서 먼 쪽으로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변화구 투수들이 타자의 스트라이크존 설정을 무너트리는 흔한 방법 중 하나다.
배지환은 이 수 싸움에 당했다. 3구째 81.3마일 커터는 한복판 존에서 밑으로 낮게 떨어졌고, 배지환은 여지없이 방망이를 헛돌렸다. 1B2S로 볼카운트가 유리해진 벨로조는 4구째에 비슷한 코스로 또 커터를 던졌다. 다만 이번에는 구속을 약 2㎞정도 높였다. 이게 배지환의 스윙 타이밍을 완전히 뺐은 결과로 이어졌다. 스윙은 공의 밑부분을 살짝 건드려쏙, 파울팁으로 삼진처리가 됐다.
배지환의 세 번째 타석은 역시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 이번에는 주자가 나가 있었다. 추가점이 필요한 상황이라 적시타 또는 최소한의 진루타가 필요했다. 마침 마이애미가 투수를 좌완 앤서니 베네치아노로 교체했다.
왼손에 95마일대 포심패스트를 주무기로 하는 유형. 선발 벨로조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배지환은 이번 승부에서도 조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초구 95.3마일(약 153.4㎞) 바깥쪽 높은 포심을 건드렸지만 파울. 2구째 94.2마일(151.6㎞) 포심은 스트라이크.
1, 2구가 모두 바깥쪽 높은 코스였다. 이어 볼카운트 0B2S에서 3구째에 87.3마일(140.5㎞)짜리 슬라이더가 바깥쪽 아래로 뚝 떨어졌다. 전형적인 헛스윙 유도 볼배합인데, 배지환은 이번에도 당했다. 결국 3구 삼진. 이날 타석 중에서 가장 안 좋은 승부였다.
배지환은 7회초 무사 2루의 득점 찬스에서 이날 네 번째 타석에 나왔다. 피츠버그가 역전점수를 낸 데 이어 빅이닝을 기대하는 순간이었다.
앞서 선두타자 애덤 프레이저의 좌전안타, 이이재아 카이너-팔레파의 우전 안타로 무사 1, 3루가 됐다. 이후 카이너-팔레파의 2루 도루와 포수 송구 실책으로 선행주자 프레이저가 득점하며 3-2로 피츠버그가 전세를 뒤집었다.
배지환은 승리에 큰 보탬이 될 찬스에 타석에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망스러운 모습만 남겼다. 마이애미 우완 불펜 로니 엔리케즈의 초구와 2구는 모두 높은 코스의 볼이었다. 볼카운트 2B0의 유리한 상황이 됐다. 그런데 배지환은 3구째 한복판 체인지업(90.8마일)에 갑자기 번트를 시도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타격 초이스였다. 심지어 파울이 되며 성공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4구째 슬라이더(87마일)가 스트라이크존을 높은 쪽을 통과하는 걸 그냥 지켜봤다. 치기 좋은 코스와 구속이었지만, 이때는 오히려 방망이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더니 볼카운트 2B2S에서 5구째 바깥쪽 높은 강속구 95.5마일(약 154㎞)에 헛방망이질을 해버리고 더그아웃으로 돌아나갔다.
결국 배지환은 3-3으로 맞선 9회초 1사 1루에서 대타 앤드류 매커친으로 교체되고 말았다. 네 번의 타석에서 삼진만 3개. 특히 1번 타자임에도 타석당 평균 4구 안쪽(3구-4구-3구-5구)에 승부를 걸어 전부 실패했다. 타석에서 냉정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 첫 MLB경기 출전, 그것도 1번타자 선발이었다는 점 때문에 배지환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긴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건 메이저리그에서 변명 축에도 들지 못한다.
시범경기에서 예상외의 맹타를 휘두르며 기적적으로 MLB 개막엔트리에 합류한 만큼 그에 걸맞은 타격능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이날 경기로 인해 배지환에 대한 피츠버그 코칭스태프의 평가는 상당히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기회는 무한정 주어지는 게 아니다. 특히나 배지환 같은 애매한 레벨의 선수에게는 더욱 그렇다. 최악의 경우 이게 마지막 찬스였을 수도 있다. 하필 이날 피츠버그는 연장 12회 접전 끝에 4대5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배지환에 대한 평가가 더욱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기회가 주어질 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다음 기회 때는 팀에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남는 건 마이너리그행 통보 뿐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2025-03-30 09:3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