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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태릉선수촌 내 위치한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국가대표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국가대표' 어린 선수들도 훈련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고, 세계 8번째의 400m 실내 아이스링크다. 국내최고, 최대의 시설과 국가대표선수 훈련시설의 우수한 빙질, 쾌적한 분위기다. 국가대표선수의 훈련모습을 직접 보면서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는 메머드급 스케이트장'이라고 소개돼 있다.
실상은 아니었다. 기본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의 관리 영역이라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는 국가대표 전용 라커룸 2개를 제외, 10개의 라커룸이 있다.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 팀은 20여 개가 넘는데, 라커룸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라커룸이 있는 팀들도 마냥 좋아할 것은 아니다. 남녀 탈의실이 구분돼 있지 않을뿐더러 화장실도 고장 나서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다.
지난 16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9년 전국남녀 종별종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의 팀은 초중고 학생으로 이뤄져 있어요. 팀이기 때문에 하나의 라커룸을 다 같이 사용하죠. 그런데 엄연히 남녀가 있음에도 옷을 갈아입을 공간은 나뉘어져 있지 않아요. 사실 어렸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성장하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에 뉴스를 통해 빙상계 성폭력 문제를 알게 됐는데,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당장 바뀌는 것은 없잖아요. 그냥 '내가 더 조심해야겠다' 이런 생각만 해요"라고 푸념했다. 실제로 중학생 여자 선수와 성인 남자 선수가 하나의 라커룸을 쓰는 곳도 있었다.
불편한 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는 한 선수는 "라커룸이 좁기도 하지만, 남녀 구분이 돼 있지 않으니까요. 그냥 화장실에 가서 갈아입는 게 마음 편해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빙상계는 최근 미투 열풍이 거세다. 공교롭게도 태릉을 찾았던 이날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성폭력 비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발표가 있었다. 문체부는 국가대표 관리와 운영실태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 체육분야 성폭력 조사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참여 검토,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 인권관리관 배치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문체부의 발표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없기 때문.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아이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고등학교 여자 선수는 "제가 속해있는 팀은 라커룸이 없기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요. 하지만 라커룸이 있는 친구들도 탈의실을 찾아요. 남자 선수들과 라커룸을 같이 쓰니 옷 갈아 입을 때 불편하잖아요. 많이 좁고 불편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선수는 "남녀가 하나의 라커룸을 사용하는거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운동했던 친구에요. 볼 것도 없고, 보여줄 것도 없어요. 저희가 원하는 것은 그저 빙상장이 하나라도 더 늘어나는 것이에요. 태릉까지 2시간 걸리는 아이들도 있어요"라며 너무 열악한 훈련 현실을 꼬집었다.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현재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급히 수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눈앞의 문제를 치우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기본적인 인권의식과 인프라조차 갖춰져있지 않은 현실. 현재 논란이 되는 상황은 일찌감치 예고돼 있던 일이다.
이에 대해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관리단체인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라커룸은 국가대표 선수를 위한 곳이다. 선수들은 선수촌에 살기 때문에 라커룸은 짐을 놓는 용도로만 활용된다. 일반 선수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대관 등은 빙상연맹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확인을 위해 빙상연맹에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태릉=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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