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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도 못받는 청룡장'이라는 보도 이후 체육훈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최고의 선수 김연아에게 최고의 훈장 청룡장은 지당하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특례조항'을 적용해야만 최고의 훈장을 수여할 수 있다는 규정은 아이러니하다. 서훈기준의 모순을 자인하는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세계 최고의 피겨여왕' 김연아조차 받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서훈 기준에 대한 것이다. 개정전 청룡장 기준(1000점)이라면 김연아의 점수는 430점을 웃돈다. 청룡장을 받고도 한참 남을 점수다. 한꺼번에 기준점수를 500점 올렸다. 상향된 기준 탓에 김연아조차 청룡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서 '비정상의 정상화'는 문제를 인식하고,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재조정하는 일이다. 시스템을 바꿔 김연아와 같은 희생자를 또다시 만들지 않는 일이다.
빗발치는 비난 여론속에 정부의 선택은 '특례조항'이었다. '국민 사기진작과 국위를 선양했다고 특별히 인정하는 종목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과 협의, 일정 가산점을 부여 훈격 조정이 가능하다'는 특별조항으로 급한 불을 껐다. 올림픽 종합성적 10위 이내 및 2연패, 아시안게임 종합 2위 이내 및 3연패,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을 동시 석권,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최초 메달 획득 또는 세계신기록 등의 자격에 부합했다. 김연아가 청룡장을 받게 됐다는 사실에 안도할 일이 아니다. 올림픽 최초의 피겨 금메달리스트, 세계신기록 보유자 김연아가 '특례규정'이 아니라, 정상적인 서훈기준에 따라 '당연히' 청룡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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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훈장은 훈격에 따라 청룡장 맹호장 거상장 백마장 기린장 포장으로 나뉜다. 2014년부터 개정, 적용된 청룡장(체육훈장 1등급) 서훈기준은 1500점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600점, 은메달은 360점, 동메달은 200점이다. 국제대회에서 서훈에 상응하는 점수를 획득한 선수는 직접 소속 연맹이나 협회를 통해 대한체육회에 서훈을 신청한다. 대한체육회가 문체부에 서훈을 요청하면, 정부가 관계부서와 심사 후 훈장을 수여한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직후나 은퇴를 앞두고 점수를 정산해 훈장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체부는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세 선수의 청룡장 수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상화(2475점)와 박승희(3125점)는 이미 기준 점수를 훌쩍 넘었다. 그간의 절차대로라면 '선배' 장미란 이규혁 진종오 김재범 등이 그랬듯 해당 협회에 서훈을 신청하면 된다. 박세리 박인비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친 프로선수들처럼 '특례조항'을 통한 것이 아니라면, 정부가 먼저 나서 청룡장 수여를 추진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그간의 관례와 형평성에 어긋난다.
'수영영웅' 박태환은 베이징,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600점), 은메달 3개(360×3=1080점), 아시안게임에서 6개의 금메달(150×6=900)을 획득했다. 박태환의 서훈 점수는 이미 3000점을 상회한다. 최초의 수영종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그랜드슬래머인 만큼 '특례규정'에도 당연히 부합한다. 그러나 박태환은 대한수영연맹, 체육회를 통해 신청을 해야 청룡장을 받을 수 있다. 박태환의 훈장은 왜 국가가 먼저 챙겨주지 않는가.
'도마의 신' 양학선은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체조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했다. 한국 최초의 체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10년 이후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1위를 휩쓸었다. 그런 양학선의 2014년 기준 서훈점수는 1070점이다. 세상에 없는 난도 6.4의 기술로 세상의 모든 금메달을 휩쓸었지만, 1500점에서 아직 430점이 부족하다. 김연아와 마찬가지로 '특례조항' 적용이 가능하다. 양학선의 훈장은 왜 정부가 챙겨주지 않는가.
이밖에도 숨은 사례들은 많을 것이다. 정부가 '소치 영웅'들의 활약을 치하하고, 청룡장을 챙겨주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이 여론에 떠밀려 또다른 선수들을 소외시키는 일이 돼서는 안된다. 국가가 주는 명예로운 훈장은 절차나 방법에 일관된 원칙이 있어야 한다. 향후 국가가 선수들의 공적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국제대회 직후 청와대 오찬에서 서훈 대상자에게 훈장을 걸어주는 의식을 제도화한다면 좋을 것이다. 여론을 달래는 '일회성 이벤트'보다 선수 모두를 위한 진심, 진정성 있는 제도 개선이 먼저여야 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