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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동네야구를 즐기고 있는 필자의 소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얼마전 배팅 장갑을 사달라고 했다. 초등학생은 악력이 약해 장갑을 끼면 미끄러지지 않고 배트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봤을 때, 연식구로 야구를 하는 초등학생에게 배팅 장갑은 당장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프로야구 타자 대다수가 양손에 장갑을 끼고 있어, 아이들이 보면 배팅 장갑은 당연히 필요한 야구 장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장갑을 끼지 않고 타석에 서는 프로야구 선수도 있다. KIA 타이거즈 정성훈(38)이 그렇다. 오른손 타자인 정성훈은 왼손에만 장갑을 끼고 오른손은 맨손으로 배트를 잡는다. 정성훈은 "어린 시절부터 장갑을 안 끼고 타격을 해 습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성훈은 아주 추운 날씨가 아니면 오른손에 장갑을 착용하지 않는다.
정성훈은 "장갑을 끼게 되면 시간적 여유없이 타석에 들어가야 될 때가 있다"는 애기도 했다.
야수는 수비가 끝나고 다음 이닝의 선투타자로 타석에 들어갈 때, 이닝 교체시간인 2분 내에 준비를 해야 한다. 수비위치에서 더그아웃으로 뛰어들어가 타격 장비를 챙기려면 시간이 빠듯할 수 있다. 장갑을 끼는 시간을 생략하면 경기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투수 구종 등을 정리할 여유가 생긴다는 게 정성훈의 말이다.
단점도 있다. 배트가 부러지거나 몸에 맞는 볼이 나왔을 때 충격이 크다. 정성훈은 "손이 큰 편이 아니고 두텁지도 않다"면서도 익숙한 맨손을 고집하고 있다.
정성훈 외에 장갑을 한쪽 손에만 끼는 선수가 또 있다. 넥센 히어로즈 이택근이다. 정성훈은 "(이)택근이는 손이 크고 두터워 나보다 부상 걱정은 적을 것 같다"고 했다.
정성훈과 이택근은 1980년 생 동갑내기다. 2003년 나란히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었고, LG 트윈스에서 함께 뛴 경력이 있다. 38세 베테랑인 둘은 올 시즌 풀타임 출전은 아니지만,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팀에 공헌하고 있다.
1990년대에 이종범 박정태 등이 장갑을 안 끼었는데, 정성훈과 이택근이 맨손으로 배트를 잡는 마지막 세대인 셈이다.
타자에게 배팅 장갑은 꼭 필요한 장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장갑 착용 여부에 따른 장단점, 효용을 따져보면서 고민하다보면, 타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