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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수용 됐던 소록도의 인권 말살의 비밀이 공개됐다.
그때를 회고한 이남철은 "인간인데 인간 대접도 못 받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고 말했고, 강제 낙태 피해자였던 장인심은 "도살장에 끌려가듯 끌려갔다. 까마귀가 까마귀를 낳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끔찍한 과거를 떠올렸다. 강제 낙태로 세상 밖으로 나온 태아들은 포르말린이 담긴 유리병에 넣어진 채 표본으로 만들어졌고, 결국 방치됐다. 감시의 눈을 피해 태어난 아이는 '아직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뜻의 '미감아'로 불리며 부모와 떨어져 소록도 보육소에 강제 입소해야 했다. 서영희는 "상상도 안 간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소록도 보육소의 환경은 열악했고, 아이들은 배고픔에 허덕였다. 보육소의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부모와의 만남이 있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2m의 거리 간격을 유지한 채 1시간의 만남을 허용받았다. 1시간 동안 통곡이 이어진다고 해서 '통곡의 신작로'라는 뜻의 '수탄장'이라 불렸다. 당시 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되자 서영희는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을 잇지 못했고, 청하는 "너무 달려가고 싶을 것"라며 오열했다. 장성규는 "이를 두고 누군가는 '아이를 엄마에게서 뜯어갔다'고 표현했다"며 전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소록도를 떠나 대구에 위치한 삼육학원으로 강제 진학해야 했고, 한센병 자녀라는 이유로 부모 면회는 물론 고된 생활도 이어졌다.
이미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은 일본의 사례에 비해 우리나라의 한센병 피해자들은 지난 2013년에 이르러서야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를 끌어낼 수 있었다. 장성규는 "소록도에는 두 가지가 없다. 하나는 아이, 다른 하나는 무덤이었다"며 생을 마친 환자들은 화장됐고 하나의 분봉에 만기가 넘는 유골들이 잠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청하는 "소록도에 대해 이제 안 것 같다. 부끄럽다"고 말했고, 장성규는 "이제라도 그분들이 평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바란다"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