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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떠나던 날, 넥센은 자기 반성부터 했다

함태수 기자

기사입력 2015-10-14 20:13 | 최종수정 2015-10-14 22:45


14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두산과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경기가 열렸다. 두산이 9회 거짓말 같은 6득점으로 11대9로 승리하며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믿을 수 없는 역전패를 당한 넥센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10.14

충격적인 역전패와 함께 8년 간 정 들었던 집을 떠나는 날, 넥센 히어로즈는 냉철한 자기 반성부터 했다.

히어로즈는 13일 목동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 베어스에 9대11로 패했다.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올 가을야구를 허무하게 끝냈다. 2년 전 두산과 맞붙어 2승 뒤 3연패 한 히어로즈는 설욕을 다짐했지만,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 불펜 과부화 등 몇 가지 악재가 겹치며 올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1989년 아마추어 전용 야구장으로 지어진 목동 구장도 프로야구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히어로즈는 내년 시즌부터 고척돔을 홈으로 쓴다. 2008년 창단 이후 8년 간 이어진 동행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마지막 밤, 옛 추억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구단은 특별한 행사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날 입장 관중은 총 8227명. 히어로즈 팬이 절반 정도였지만 9회말 정규 이닝이 끝나자 서둘러 구장을 빠져나갔다.

구단은 지난 3일 정규시즌 최종전에서도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았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가 끝난 뒤 예년과 같은 평범한 장면만 연출됐다. '2015시즌 가을야구를 착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선수들은 현수막을 들고 관중에게 인사했다.

이는 삼성과 대비됐다. 삼성은 2일 정규시즌 최종전이 열린 대구 시민야구장에 레전드들을 모두 초대했다. 이선희 배대웅 함학수 우용득 오대석 이만수 김시진 박충식 등 삼성을 빛낸 레전드들이 옛 향수에 잠겨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 후에도 불꽃놀이 등으로 '준비된 이별'을 했다.

그런데 히어로즈는 냉정히 말해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고척돔으로 옮기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건물주는 갑자기 집을 비우라 통보했다. 게다가 히어로즈와 서울시가 고척돔 이전과 관련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날짜가 5일이다. 최종전이 열릴 당시에는 고척돔 이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히어로즈 관계자는 "고민을 거듭했다. 작별 이벤트를 해야한다는 의견과 아니라는 의견이 팽팽했다"며 "이전과 관련해 확정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벤트 계획도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날은 상황이 좀 다르다. 가을 야구는 보너스 게임이다. 잠실에서 2연패를 당하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 승리 말고는 다른 부분을 생각할 여유도, 여력도 없었다. 선수들은 경기 후 3루쪽 덕아웃에서 나와 관중에 인사하는 걸로 마지막 목동에서의 경기를 마무리했다.


다만 구단은 8년 간의 생활을 마무리 하는 자리에서 냉철한 자기 반성을 했다. 구단 수뇌부는 SK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포함해 전날, 이날도 외야 관중석이 텅 비자 직원들을 스탠드로 올라가보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팀과 함께하는 히어로즈를 만들어야 한다.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물론 '잠실 라이벌' LG-두산의 경쟁 구도가 뚜렷한 상황에서 히어로즈 구단이 팬층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목동구장 근처에 사는 서울 시민조차 상당수가 LG 또는 두산 팬이다.

그래도 히어로즈는 목동 시대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뛰어 넘는 성적을 올리든, 마케팅에 더 신경을 쓰든, 야구팬이 찾고 싶어하는 구단을 만들자는 것이다. 히어로즈 관계자는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도 인정한다"며 "이곳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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