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태균의 헬멧 더러운 이유 알고보니...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05-25 13:27


안타로 출루한 뒤 최만호 주루코치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김태균의 헬멧은 유독 시커멓게 더러워 보인다. 여기에는 정교한 타격의 비법이 숨어 있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빈티지 패션 아니랍니다."

한화 김태균은 유님폼과 타자 장비를 모두 착용한 겉모습에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때 유독 다른 점이 있다.

구단 내부 관계자들도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빛바랜 헬멧이다.

김태균의 헬멧은 유독 광이 나지 않는다. 손때가 묻어서 더러워진 것 같기도, 오래 사용해서 닳아빠진 듯 보이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김태균이 과거에 잘나갔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일본리그로 진출(2010년)하기 전에 한화에서 사용했던 헬멧을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한화 구단은 올시즌 개막을 맞아 헬멧 등 경기용 장비를 새것으로 선수단에 지급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다른 선수들의 헬멧을 여전히 반짝반짝 광이 나지만 김태균의 것만 중고품처럼 돼버렸다.

그렇다면 최근 유행하는 이른바 '빈티지룩(새옷 같은 느낌이 아니라 오랜된 브랜드나 정품의 낡은 듯 멋진 느낌이 드는 패션 스타일)'을 구사하는 것일까.

이 역시 아니다. 김태균에게 직접 확인해봤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끈끈이'를 발라놓았기 때문이다.

'끈끈이'는 일명 '타이거 스틱'이라고 불리는 타자들의 필수장비다. 정식 명칭은 핸드그립스틱인데 미국산 '타이거 스틱'이라는 제품명이 대명사로 굳어졌다.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방방망이 손잡이 부분에 열심히 문지르는 게 바로 '끈끈이'다. 파라핀 성분의 이 스틱은 방망이를 잡았을 때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도록 끈적끈적한 성질을 갖고 있다.

색깔이 갈색이어서 이걸 문지르면 금세 낡은 것처럼 더러워진다. 김태균은 이 '끈끈이'를 헬멧 윗부분에 잔뜩 발라놓은 것이었다.

괜한 습관이 아니라 김태균 만의 노하우가 숨어있는 비법이었다. 방망이에 착 달라붙는 최적의 손바닥 상태를 항상 유지해 공을 잘치기 위해서다.

타자들은 투수와 상대하는 와중에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손에서 땀이 배어나와 대기타석에서 발라뒀던 '끈끈이'의 약효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김태균은 이럴 때 헬멧에 묻혀놓은 '끈끈이'에 손을 얹어 '끈끈이'를 다시 바른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투구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쏟으려는 특유의 섬세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기타석에서부터 상대 투수의 피칭을 관찰할 수 있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메이저리그 휴스턴에서 전설의 타자로 기억되는 크레이그 비지오다.

비지오는 '빛바랜 헬멧'으로 유명했는데 김태균처럼 '끈끈이' 기법을 사용한 원조였다. 비지오는 현역 시절 "대기타석에서 방망이에 그립스틱을 바르거나 스프레이를 뿌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 상대투수가 선행타자와 어떻게 승부하는지 볼 수 없다"면서 "헬멧에 발라놓은 그립스틱을 손에 묻히면서 상대 투구를 관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상대 투구에 한시라도 눈을 떼지 않고 관찰했다가 자신이 타석에 들어서면 어떻게 승부해야 할지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등 매순간 집중하겠다는 세밀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김태균 역시 비지오와 같은 효과를 얻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태균은 자신의 타격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평소 생활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쏟아붓는 선수로 팀내에서 유명하다.

지난 스프링캠프때 김태균과 같은 방을 사용한 이여상은 방 안에서 다른 일을 할 때도 손목 스냅과 하체 이동 훈련을 하는 김태균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어떤 때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타자로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는 김태균의 치밀한 준비자세가 헬멧에서도 묻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김태균은 올시즌 부동의 유일한 4할 타율 타자로 무서운 방망이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김태균은 "외견상 지저분하지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다른 타자들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며 배시시 웃었다.

얼핏보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손바닥 그립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김태균. 그의 빛바랜 헬멧은 진정한 프로의 상징이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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