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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위압감이 느껴졌다. 엄청나게 큰 키(1m93으로 알려졌다)에서 나오는 '기'에 잠시 눌렸다. '조금 크다고는 들었는데….' 초반부터 기에 눌리면 인터뷰가 힘들다.
"앞으로 일할 맛 나겠는데요"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인터뷰가 끝나고 난 뒤다. 한 연맹관계자의 표정이 밝았다. "총재님 말씀을 들으니, 앞으로 일할 맛이 나겠는데요."
이 말인 즉, 총재가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것이다. 위와 아래가 마음이 맞으면. 그 조직은 잘 굴러갈 수 밖에 없다.
'일할 맛'을 언급한 이유, 인터뷰를 들어보자.
"소통하고, 설득해야죠"
총재 취임 후 6개월이 지났다.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한항공)구단주를 맡고 한 넉달만에 총재 제안을 받고는 전 총재님 뵙고 여러가지 말씀을 들었어요. 제일 먼저 '대한항공을 응원하지 마라'고 하시더라구요. 마음이 아팠어요. 선수단이 힘들었던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팀에 더 애착이 가고 그랬는데. 총재 구단으로, 선수단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더라구요." 아니였단다. "할 필요없는 걱정이었죠. 전체 팀을 우리 식구로 받아들이니까 그렇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모든 구단에 애착이 가요."
물론 총재의 임무가 만만치 않다. "이사회를 여러번 해봤는데 한번도 쉽게 끝난 적이 없어요. 모든 안건에서 이해관계가 틀리고. 반대의견을 들어보면 이해가 가죠." 그래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 "상황이 어떻든 총재로서 끌고 나가야 하잖아요,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고, 최대한 동의를 구해서 가려고 합니다. 연맹에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도 했구요. 단장들과의 소통채널을 많이 오픈하면서 필요한 건 직접 찾아가서라도 설득을 할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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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인터뷰, '일할 맛'의 이유가 밝혀진다. "(총재직을 맡고)갈수록 애착이 가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이 생겼어요. 임기 동안 뭔가 발전을 시키고 싶다는 목표도 세웠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하고 찾아보니까 '시스템화', '국제화'더라구요." 그동안 묵은 숙제였다. 누구도 풀어내지 못했다.
"사실 배구에도 시스템이 들어간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미국프로스포츠의 경우 시스템이 어마어마한데, 아직도 우리 배구장에서는 손작업을 하는 게 많더라구요. 경기를 할 때도 비디오 판독 시스템 정도가 있는데 그나마 심판은 잘 보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공정성 문제도 생기잖아요. 그래서 이것 만큼은 해야겠다고 해서 조금씩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데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지금은, 제 나름대로 무엇을 해야할지 보이더라구요." 최근 핫이슈인 정 현의 테니스 경기를 예로 들었다. "정 현 선수 경기를 보니까 테니스장에는 자동으로 '인아웃'을 판독하는 기계가 있더라구요. 이게 무엇인지 확인을 해보려고 밤새도록 유튜브를 뒤져봤죠. 배구에서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할 것 같더라구요. 정확성과 공정성을 위해서라면 돈이 들더라도 빠른 시간내에 도입해야죠." 바람이 이어진다. "모든 팬들에게 많은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싶어요. 불미스런 일 없이,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계속 열정을 갖고 응원할 수 있도록 어떻게 선진화를 해나갈지 고민이 많습니다."
국제화에 대한 욕심도 밝힌다. "그동안 외국사람과 대한항공 사장으로 만났는데, 유럽사람들과 만나서 배구연맹 총재라고 하면 보는 눈이 틀려지더라구요. 친선경기 이야기도 하고. 저도 관심이 많아서 리그우승팀 대결 이벤트 같은 것을 추진했으면 해요"라며 "지난 올스타전을 보니까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더라구요. 그런 이벤트를 포함해서 프로스포츠 선진국의 노하우를 직원들이 많이 보고 배워 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선진스포츠 견학도 보내고 해서 수준 높은 운영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란다. 옆에서 같이 듣던 연맹직원의 눈빛이 반짝인다.
선수들 은퇴 후 삶은?
연맹총재의 중요한 임무가 또 있다. '미래자원 개발'이다. 효율적인 유소년시스템 속에서 유망주들을 키워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에 대해 "유소년 때부터 유망주를 발굴, 육성하는 것 중요하지요. 연맹차원에서도 많은 지원을 할 겁니다"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하는 조건을 붙인다. "선수들이 학업에는 신경쓰지 못하고 운동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그만둬야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러면 그 후에 삶은 누가 책임집니까. 때문에 최소한의 학업은 이뤄져야 하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영어 한마디 못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어학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감독이나 코치를 해도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공부하는 학생선수', 조 총재가 바라는 '인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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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연맹은 대한배구협회와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남녀 동반 우승 및 2020 도쿄올림픽 본선진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그동안 국가대표팀 차출을 두고 구단과 협회의 갈등이 적지않았다. 이에 대한 조 총재의 생각은 어떨까. "저는 선수들에게 구단보다는 국가가 우선이라고 강조합니다. 국가대표가 먼저지, 어떻게 구단을 먼저 생각할 수 있냐고 말하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선수들한테 강요할 수 만은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단의 입장에서는 스타플레이어가 차출돼서 다치기라도 하면 손실이 크죠. 하지만 국가대표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데 그건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당을 더 주고 안주고, 대표팀에 가고 안가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태극마크가 주는 무게가요." 국가를 위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재미있고 실망을 안주는 스포츠가 됐으면 해요"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제가 키가 커서 그런가요"라며 웃는다.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역량이 부족하지만 자신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고. 연맹의 총재로서 팬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서 더 끌어들일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겠습니다. 배구를 재미있고 실망을 안주는 스포츠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어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이쯤되면 '파장' 분위기가 맞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서질 않는다. 한마디라도 더 듣고자 하는 표정이다. 몇마디를 더 나누고 악수를 청했다. 키가 컸다. 기대도 커졌다.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