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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밤 일본 도쿄 요요기체육관에서 펼쳐진 도쿄세계선수권 여자 단체전 시상식, 우승국 중국과 준우승국 일본, 3위 대만, 홍콩 선수들이 시상대에 도열했다. '아시아 탁구강국' 대한민국은 그곳에 없었다.
양영자 "지더라도 배짱있게 쳐라"
요요기체육관은 양영자 감독에게 잊지 못할 장소다. 31년전 바로 이곳에서 열린 도쿄세계선수권에서 중국선수들을 줄줄이 꺾고 개인단식 2위에 올랐다. 16강전에서 세계랭킹 11위 겡리유안, 8강에서는 '세계챔피언' 통링, 4강에서 세계 4위 황준취인 등 중국선수들을 돌려세웠다. 4강전에서 통링을 상대로 5세트 16-20의 스코어를 21-16으로 뒤집는 투혼을 발휘했다.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차오옌화에 1대3으로 졌지만, 세계선수권 사상 첫 개인전 준우승을 달성했다.
시련이 약이 된 절절한 경험담도 소개했다. "세계선수권 준우승 이후 간염을 앓았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세계 2위에 대한 특전은 없었다. 3차에 걸친 리그전과 최강전을 바닥부터 치러야 했다. 자존심이 상해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오기가 났다. 리그전, 최강전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한 과정이 있었기에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이 가능했다고 믿는다."
청소년대표팀 감독으로서 체계적인 유소년 발굴 및 훈련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탁구는 습관의 스포츠다. 첫 습관을 잘 들이는 것, 나쁜 습관을 바꾸는 것이 관건이다. 빠른 템포에 적응하고, 빨리 돌아서는 움직임 등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배있어야 한다. 꿈나무가 중요한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현정화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한국마사회 총감독인 현정화 전무는 이번 대회 단체전에 나선 서효원-박영숙을 키워낸 스승이다. 세계 8위 '애제자' 서효원에게 수시로 이야기해왔다. "에이스, 톱랭커라면 아무한테나 져서는 안된다. 컨디션과 무관하게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야 에이스다." 독한 정신력을 주문했다. '공격하는 수비수' 서효원은 첫 출전한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조별리그 5경기, 본선 16강 전 등 6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마지막 루마니아와의 16강전(2대3 패)에서도 2승을 따내며 '나홀로' 에이스의 몫을 했다. 9경기에 나서 6승3패를 기록했다. '왼손 에이스' 박영숙은 팀플레이어로서 제몫을 해냈다. '백업'이지만, 언제든 투입될 준비가 돼있었다. 석하정의 부진속에 기회가 왔다. 제3단식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당차게 수행했다. 싱가포르전에 나서 '수비수' 리이사벨시윤을 꺾었다. 3경기에서 3전승했다. 현 전무는 제자들의 성장을 반기면서도, '16강 탈락'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첫 세계선수권에서 경험 부족이 눈에 띄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 여자탁구의 자존심을 이어가야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실력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치열한 고민과 훈련을 통해 실력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선수권 단체전은 오픈대회 ,아시아선수권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충 준비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죽기살기, 아니 죽기로 준비해야 한다. 각 팀, 각 선수에 맞는 맞춤형 전략으로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강철 멘탈'에 대한 아쉬움은 양 감독의 생각과 일치했다. "한국탁구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서효원, 양하은 등은 주전으로서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많은 걸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 우리선수들은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연습만이 능사가 아니다. 위기의 순간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낼 수 있는 독하고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도쿄=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