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장애인체육 메카 獨쾰른,행복한 휠체어를 만나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11-29 17:49


독일은 세계 장애인 생활체육의 메카다. 1888년, 최초의 장애인스포츠클럽이 창설됐다.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의 개념조차 전무했던 구한말이다. 1900년대 '장애인 스포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루트비히 구트만 박사의 노력에 힘입어 독일 장애인체육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27일 오후, 우리보다 100년 이상 앞서 있는 독일의 생활체육 현장을 찾았다. 라인강변에 자리한 대성당의 도시 쾰른, 도심 인근에 위치한 RSC-쾰른 스포츠클럽은 '휠체어스포츠'로 유명한 곳이다. 체육관에 들어서는 순간, 쌩쌩 달리는 휠체어 바퀴소리가 경쾌했다.


쾰른(독일0=전영지 기자
휠체어 타는 법부터 배운다

올해 71세인 호스트 슈트로켄들 쾰른대 교수가 이 클럽의 프로그램을 주관한다. 독일 장애인 생활체육의 선각자다. 1969년 이 클럽 창랍 당시 자원봉사자로 일을 시작한 이후 무려 43년째 몸을 담고 있다. 1976~1998년까지 독일장애인체육회 임원으로 활동한 그는 장애인을 스포츠의 길로 인도하는 데 탁월한 노하우를 지녔다. 그 첫단계가 '휠체어 교수법'이라고 했다. 비장애인인 그는 장애인들을 위해 27세 때부터 온몸으로 넘어지며 휠체어를 배웠다.

61세의 바바라씨(여)는 이날이 4번째 수업이라고 했다. 1대1 맞춤형 지도에 따라 매트 위에서 휠체어를 앞뒤로 움직이고, 무게중심을 옮기고, 턱을 넘는 연습을 계속했다. 생후 11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줄곧 목발생활을 해오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휠체어를 타기로 결정했다. 늦은 나이에 만난 휠체어는 때로 '장애물'이었다. 낮은 턱이라도 오를라치면 늘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스스로 이 클럽을 찾은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에서 휠체어는 장애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슈트로켄들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휠체어 조작법'을 가르친다. 어릴 때부터 휠체어와 친숙하다. 휠체어농구도 함께 즐긴다. 조작법을 알기 때문에 장애인을 어떻게 도와야할지도 알고 있다.


쾰른(독일0=전영지 기자
동료와 함께하는 '교감' 휠체어럭비

휠체어럭비는 팔이 자유롭지 않은 경추, 척추마비 장애인들을 위해 휠체어농구 대신 고안된 종목이다. 이 클럽에선 1992년 첫 도입 이후 총 40명(남자 30명, 여자 10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수준별 반편성을 통해 일주일에 2번씩, 2시간의 운동과 경기를 즐긴다. 6000유로(약 850만원)에 달하는 럭비전용 휠체어는 대부분 개인 소유다. 국가에서 보험적용을 받는다. 이날 만난 8명의 동호인들은 5~10년 동안 이 클럽에서 럭비를 해온 베테랑들이라고 했다. 코치 없이 그들만의 규율에 따라 몸을 풀고, 경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독일 휠체어럭비 리그는 선수층이 두텁다. 1~3부리그 40개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현옥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부장은 "동호인들의 경기력이 우리나라 국가대표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휠체어럭비는 '머더볼(murdur ball:살인구)'이라 불릴 정도로 격렬한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중증의 장애인일수록 가장 격한 경기를 한다. 휠체어농구가 충돌을 금지하는 데 비해, 휠체어럭비는 상대와 끊임없이 부딪히는 격렬한 스포츠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이들에게 '럭비'는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매개다. 5년째 휠체어럭비를 즐기고 있는 팀 다일러씨(39)는 "휠체어럭비는 내게 겁없이, 걱정없이 맘껏 부딪히고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럭비를 통해 세상과 교감하게 됐다"며 웃었다.


쾰른(독일0=전영지 기자
가족이 함께하는 '어울림' 휠체어탁구


탁구장에서 평화롭게 공을 주고받는 비장애인 어른과 장애인 아이의 얼굴이 쏙 빼닮았다. 아빠와 아들이다. 슈트로켄들 교수는 "장애인에게 좋은 것은 가족에게 좋은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때로 장애인 가족은 장애인보다 더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린다. 가족과 함께 재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 클럽은 다양한 가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운동을 통해 가족이 함께 '힐링'받는다. "휠체어스포츠는 잘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1인당 1년에 120유로(약 17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든 이곳에서 다양한 휠체어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학생이나 소외계층은 48유로(약 6만7000원)면 된다.

'경쟁보다는 어울림'이 독일 장애인 생활체육의 모토다. 독일에서 휠체어스포츠를 즐기는 인구는 7000명 정도다. 이중 일부인 150~200명만이 패럴림픽 등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엘리트 체육인이다. 소수 선수의 운동능력 향상보다 생활 속 장애인들의 정신적, 심리적인 변화를 중시하고 있다. "스포츠를 함께하면서 존중받고, 소통하고, 교감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슈트로캔들 교수는 "장애인에게 스포츠는 취미가 아닌 '삶의 질' 문제다. 병원과 집만 오가던 장애인들이 운동을 통해 집밖으로 나오고 사람을 만나고 인생의 활력소를 되찾는다. 장애를 겪으면서 자기가 몰랐던 능력도 깨우치게 된다. 그 능력과 성취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쾰른(독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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