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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AG인터뷰]'2관왕 2연패'이도연"새장비 사주신 작은아버지,가족의 힘으로!"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10-09 16:32




"금메달의 기쁨?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크다."

'철녀' 이도연(46·전북)이 장애인 아시안게임 핸드사이클 2연속 2관왕 목표를 기어이 달성했다. 이도연은 9일 오전(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의 센툴 국제 서키트에서 열린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 핸드사이클 여자 로드레이스(스포츠등급 H2-4) 결선에서 1시간15분16초713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전날 여자 도로독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도연은 2관왕에 등극했다.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이어 2회 연속 2관왕이다. 이도연은 인천 대회에서도 도로독주, 로드레이스에서 모두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이틀 연속 압도적인 레이스로 2연속 2관왕을 일궜지만, 이도연은 담담했다. 그는 "기뻐야 정상인데 그냥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에게는 더 크다. 오늘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했다"며 "달리다보면 멈추고 싶고, 쉬고 싶고,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걸 이겨내고 달려온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메달을 노리고 나선 세계선수권에서 장비 불량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을 딛고 일어나 이룬 2관왕이다. 작은 아버지가 새 장비 마련을 위해 2000만원을 선뜻 쥐어줬다. 자신의 전부라고 말하는 세 딸은 존재 자체로 힘이 되는 이들이다.

작은 아버지가 2000만원 들여 사준 새 장비로 금빛 질주

장애인아시안게임을 두 달 앞둔 지난 8월 이탈리아 마니아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장비 불량 탓에 제대로 된 레이스를 펼치지 못했다. 메달을 노리고 폭염 속에서도 훈련을 이어갔지만, 실력 발휘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이도연은 "사이클 탄 지 5년 만에 가장 큰 아픔이었다. 나름대로 관리했는데 정말 우연찮게 생각지도 않은 불량이 생겼다"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때 메달을 딴 장비라 아꼈는데 마음이 아팠다"고 떠올렸다.

이 사연은 한 방송을 통해 방영됐다. 이를 본 이도연의 작은 아버지가 나섰다. 새로운 장비를 사라며 흔쾌히 2000만원을 내줬다. 이도연은 "작은 아버지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장비 불량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우셨다고 하더라. 적지 않은 돈인데도 열심히 하라며 건네셨다. 장비에 문제가 있으면 또 사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보험을 든 듯한, 든든한 느낌이 든다"며 활짝 웃었다. 정들었던 장비는 다른 선수에게 흔쾌히 줬다. 그는 "장비를 누구보다 아껴서 내가 쓰던 장비가 가치없이 쓰이는 것이 싫다. 운동을 정말 하고 싶어하는데 어려운 선수에게 고쳐서 줬다"고 말했다.


자신이 다른 대회와 비교해 장비에 소홀히 한 탓에 일어난 일이라고 자책한 이도연은 이제 힘겨운 레이스를 펼치면서도 장비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자신의 몸이나 다름없이 다독이는 것이다.

이도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제 달리면서 자전거를 향해 이야기를 한다. '오늘도 우리 시작했어', '나름대로 힘을 쓸테니 사고없이 가줘', '조금 더 달리자'고 한다. 사람들이 웃기다고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도연을 일으켜 세운 가족의 힘…이제 그들을 위해

1991년 건물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된 이도연은 장애 이후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생활을 했다.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던 그를 밖으로 이끈 것은 어머니 김삼순씨(70)였다.

이도연은 "내가 다치고 나서 어머니가 많이 울었다. 엄마가 사람들에게 내가 밖에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탁구를 시작했다. 나가니까 좋아하셨는데 그 이후로는 집에 잘 들어가질 않는다"며 깔깔 웃었다.

그가 탁구, 육상을 거쳐 핸드사이클을 한다고 했을 때 고가의 장비를 사라며 돈을 내준 것도 어머니였다.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장비를 사주고는 일주일 뒤에 이도연을 향해 "힘들면 안해도 되니 자전거 때문에 하지는 말라"고 했다. 이도연은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자전거 값이 아까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보다 나를 더 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떠올렸다.

대회를 앞두고 긴장될 때 이도연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그의 어머니는 "너는 할 수 있다.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이도연은 "그런 말들이 부담도 주지 않고, 큰 도움이 된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도연은 늘 "세 딸을 위해 달린다"고 말한다. 그는 설유선(25)·유준(23)·유휘(21) 세 딸을 두고 있다. "자신의 전부"라고 표현하는 이들이다.

그는 "첫째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길을 가다 친구들을 만나니까 우리 엄마라며 인사를 하라고 하더라. 다른 엄마들은 건강한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창피했다. 큰 딸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왜 창피하냐'며 화를 내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엄마를 당당히 여겨준다. 딸들에게 엄마가 보물이다. 이렇게 나를 아껴주는데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 해줬는데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달리고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도연을 향해 "건강하게만 하고 오라"고 격려하면서도 여름에는 핸드사이클, 겨울에는 노르딕스키를 하며 도전을 이어가는 이도연이 힘들까봐 "그만하라"며 말린다.

이도연은 "딸들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그만하라고 하는데 무시하고 운동한다. 앞에서는 '알겠다, 그만하겠다'고 하고는 돌아서서 다시 한다. 내가 고집이 더 센가보다"며 "딸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만둘까' 고민한 적 조차 없다"고 말했다.

자칫 이도연 2관왕 질주 못 볼 뻔

사실 이번 대회에서 핸드사이클이 치러지지 않을 뻔했다. 대회 조직위가 자카르타가 외곽에서 해야하는 종목들을 열지 않으려 했기 때문. 만약 그랬다면 이도연의 2관왕 질주도 못 봤을 터였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이도연이 급히 "맞다, 이 말 꼭 해야 돼요"라며 붙잡았다. 이도연은 "권기현 전 대한장애인사이클연맹회장님이 사이클 선수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엄청 노력하셨다. 권 전 회장님이 노력해주셔서 이번 대회에서 핸드사이클이 치러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도연은 "우리 스태프들도 무척 고생했다. 우리 장비 부피가 크고, 이동이 불편해 감독님을 비롯해 코치, 트레이너 선생님이 고생을 많이 했다. 2관왕은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 애쓰신 분들, 응원해주는 가족, 알게 모르게 있는 팬들을 생각하면 게으르게 할 수가 없다. 달리고 또 달려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덧부였다.

이제 2020년 도쿄 향해 전진…"베이징은 아직 모르겠어요"

장애인 전국체전까지 마치면 이도연은 노르딕스키 선수로 변신한다. 그를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서게 만든 종목이다.

이도연은 "항상 거기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훈련한다"며 "하나 하기도 바쁜데 조금 벅차다는 느낌은 들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이 지나면 2020년 도쿄 패럴림픽에 '올인'한다. 이도연은 "이제 준비해야죠"라더니 "운동 선수니 금메달이 욕심난다. 은메달 밖에 못 따서 스스로 만족을 못하겠다. 세계선수권 같은 것은 꼴찌를 해도 괜찮지만, 패럴림픽 금메달만은 정말 갖고 싶다"고 금메달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하루하루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는 이도연은 "도쿄 패럴림픽이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 패럴림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각오를 드러냈다.

'2022년 베이징 동계패럴림픽도 출전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이도연은 "그 다음 것은 지금 생각 못해요. 눈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을 때 다음이 있는 거죠. 일단 도쿄에 '올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금메달을 따고, 체력적으로 괜찮다면 또 도전해야죠"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자카르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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