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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안(33·한국명 안현수)이 꺼져가는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인 그는 안톤 시풀린(바이애슬론), 세르게이 우스튜고프(크로스컨트리 스키) 세르게이 플로트리코프(아이스하키) 등 러시아 선수 31명과 함께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평창올림픽 출전 금지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소했다.
올림픽을 위해 러시아를 선택한 빅토르 안은 1월 중순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으로 선수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할 줄 알았다. 메달 획득 유무를 떠나 태어나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메달까지 안긴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준 후 끝내고 싶었다.
상황이 돌변했다. 1월말, 빅토르 안이 IOC가 평창올림픽 출전을 허용한 '러시아 출신 선수(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 명단(169명)에서 빠졌다. OAR은 IOC가 보증하는 '깨끗한 러시아 선수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러시아 선수들은 금지 약물 의혹에서 깨끗하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 때 러시아의 조직적 도핑 의혹 실태를 폭로한 캐나다 법학자 리처드 맥라렌 보고서에서 도핑 의혹이 짙은 선수들에게 평창올림픽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 IOC는 빅토르 안 등의 출전 불가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다.
IOC는 CAS의 결정에 반발 성명을 냈다. 러시아는 징계 무효 처분을 받은 28명 중 현재 선수 13명과 은퇴 후 코치를 맡고 있는 2명까지 총 15명의 평창대회 참가를 IOC에 요청했다. IOC의 대응은 신속하고 빨랐다. '초청검토패널'을 꾸린 후 이틀 만에 15명에 대한 올림픽 추가 초청건을 검토했고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약물 자료를 재검토했지만 평창대회에 나올 만큼 깨끗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IOC와 CAS가 러시아를 놓고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듯한 양상이다. 러시아는 IOC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다. 빅토르 안 등 러시아 선수 32명이 다시 CAS에 제소하는 절차를 밟아 IOC를 계속 압박했다.
올림픽 개막까지 시일이 짧아, CAS가 시간을 끌기 어렵다. IOC도 마찬가지 입장. CAS가 빅토르 안을 비록한 러시아 선수 쪽 손을 들어주더라도 IOC가 다시 자체 '초청검토패널'을 통해 거부하면 다시 출전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IOC는 대회 개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세계에서 온 '깨끗한 선수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이 32명의 러시아 선수들 중 추가로 출전 쿼터를 받을 경우 종목별로 메달 경쟁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또 이미 출전 쿼터를 받은 선수 중에서 이탈자가 나올 수 있다. 일단은 CAS가 빅토르 안 등 러시아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막은 걸 풀어주는 게 우선이다. 안현수 등 러시아 선수들은 일본 같은 동북아 국가에 머물고 있으며 평창의 초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선수 인생은 파란만장 롤러코스터 그 자체다. 러시아 국가대표가 되기 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쇼트트랙 스타였다. 2006년 토리노대회 3관왕(1000m, 1500m, 5000m계주)으로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고, 2011년 '귀화'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2014년 소치에서 보란듯이 다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국적을 바꾸고도 3관왕(500m, 1000m, 5000m계주)에 올랐다. 빅토르 안은 러시아 올림픽 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안기며 '러시아 국민 영웅'이 됐다. 지금까지 그가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만 6개로 최다 기록이다. 전체 메달 수는 8개(금 6, 동 2)로 미국 안톤 오노(금 2, 은 2, 동 4)와 동률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입장에선 러시아 선수가 된 빅토르 안을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 미묘하다.
강릉=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