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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대표팀 전통'장금이'가 사라진 이유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3-08-05 03:07 | 최종수정 2013-08-05 06:36


이득춘 배드민턴대표팀 감독이 하태권 코치와 한국 선수단의 훈련 스케줄을 의논하고 있다. 광저우(중국)=최만식 기자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될겁니다."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2013 세계배드민턴개인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한국대표팀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른바 '셔틀콕 장금이'가 사라진 것이다. 그동안 배드민턴대표팀에서 '장금이'는 전통적인 트레이드 마크였다.

과거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유래된 것으로 대표팀 선수단이 해외원정을 다닐 때마다 현장에서 직접 밥을 짓고 찌개, 반찬 등을 만들어 주는 이를 말한다.

'장금이' 역할은 주로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맡았고, 훈련-경기가 없는 선수들도 함께 힘을 보태 식사를 직접 해결했다.

이 때문에 배드민턴대표팀이 해외 원정을 나갈 때면 밥솥 등 기본 식기와 밑반찬 등을 애지중지 챙겨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스호스텔같은 숙소에서는 양해를 얻어 방 한칸을 아예 선수단 식당 겸 주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코칭스태프가 선수들 밥을 챙겨주기 위해 사서 고생을 한 이유는 명확했다. 배드민턴은 한 번 해외 원정을 떠났다 하면 인근 국가 오픈대회를 순회하듯 돌기 때문에 3주∼1개월은 족히 걸린다.


이처럼 장기간 객지에 있다 보면 현지 음식이 질리게 마련이고, 한국음식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고 입맛에 맞는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면 힘을 못쓸까봐 선수들 사랑하는 마음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배드민턴의 '장금이'이는 훈훈한 전통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배드민턴대표팀에서는 이런 전통의 풍경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4개월 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신인 이득춘 감독(51)이 시도한 작은 변화 때문이다. 이 감독이 전임 지도자들처럼 선수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랑 표현 방식을 달리 했을 뿐이다.

이 감독은 "이제 세상도 빠르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뉴세대 선수들이 많으니 그들의 취향에 맞춰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숙소에서 선수들의 밥을 직접 챙겨주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식사 준비하고 챙겨먹느라 시간이 너무 허비된다고 판단했다.

보통 배드민턴은 국제대회에 참가 기간 동안 오전-오후 훈련과 각자의 경기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여유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여유시간을 이용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1분이라도 더 휴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요즘 세상에 밥 지어먹는 과욋일을 좋아할 젊은이들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생각도 이 감독은 한 모양이다.

더구나 젊은 선수들의 취향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 먹고 싶은 식사를 사먹도록 자율에 맡긴 것이다. 이 감독은 훈련-경기시간에 맞춰 조를 짜주고 식사비를 지급한 뒤 숙소 근처에서 원하는 음식을 마음 편히 사먹도록 했다. 이 감독은 "주니어대표팀의 경우 아직 보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단체행동을 하지만 성인대표팀은 스스로 식사 조절를 하기 때문에 대회 중에 엉뚱한 음식을 사먹을 걱정은 없다. 오히려 선수들이 획일적인 음식을 함께 먹는 것보다 좋아한다"고 말했다. 19년간 주니어대표팀을 이끌었던 이 감독의 풍부한 노하우에서 나온 조치였다.

이 감독은 "작은 식사 방식 하나 바꿨지만 선수들이 스스로 몸관리를 하는 요령도 터득하고 분위기도 한결 화기애애해진 것 같다"고 만족해 했다.

이 감독이 시도한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코치진에도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그동안 대표팀 코치진 8명은 선-후배 서열에 따라 5개 종목(여자-혼합복식은 통합체제)의 1진과 2진을 맡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 감독이 부임한 뒤에는 1진과 2진이 국제대회에서 낸 성적에 따라 1진의 코치를 맡기기로 했다.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경쟁을 유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광저우에서는 후배 코치가 대표팀 1진의 코치로 파견된 경우가 발생했다.

이 감독은 "작은 물결이 퍼져나가다 보면 나중에 큰 파도가 되지 않느냐. 한국 배드민턴이 과거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보면 된다"며 설명했다.
광저우(중국)=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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