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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오픈8강'유승민 독일리그 승률2위'형님의 투혼'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4-11 08:07


◇'펜홀더의 자존심' 유승민의 드라이브에는 투혼과 감동이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왕하오를 꼼짝 못하게 한 호쾌한 파워 드라이브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결승전에서 22세 까까머리 청년이 '세계 1위' 왕하오를 꺾었다. 온몸으로 호쾌한 드라이브를 휘두르던 '탁구신동', 오른손 펜홀더 유승민이 유남규 이후 16년만에 만리장성을 넘어, 대한민국 탁구사를 새로 쓴 날이다. 이후 9년, 또다시 긴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훈련장에 걸린 올림픽 금메달 사진은 제가 마지막이더라고요"라며 서른한살의 유승민(독일 립헬 옥센하우젠)이 헛헛하게 웃었다. 태릉선수촌 탁구훈련장에 줄줄이 걸린 금메달리스트 대형걸개 사진은 2004년 유승민에서 멈춰 있다. 세월이 흘러 20대 청년 유승민은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인천 송도 글로벌대학 국제탁구연맹(ITTF) 코리아오픈 현장에서 만난 유승민은 여전히 파이팅이 넘쳤다. 지난해 여름 런던올림픽에서 오상은(35) 주세혁(32)과 단체전 은메달 쾌거를 일궜다. 마지막까지 남은 티켓 한장을 놓고 어린 후배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올림픽 챔피언으로서 자존심도 상했다. 파워풀한 드라이브에 뒤따르는 어깨, 무릎 부상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마지막 올림픽 무대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다. 베테랑도 덜덜 떨린다는 올림픽 무대에서 침착하게 자신의 몫을 해냈다. 유남규 남자대표팀 전임감독은 자신의 선택에 무릎을 쳤다. '과연 유승민!'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아테네 단식 금, 베이징 단체전 동, 런던 단체전 은, 유승민은 3번의 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을 거머쥔 유일한 탁구선수다.


◇'올림픽 챔피언' 유승민의 독일리그 승률은 전체 2위다. 15승3패의 압도적인 전적으로 소속팀 옥센하우젠의 리그 1위를 견인했다.  사진출처=독일프로탁구리그 홈페이지
런던올림픽 직후 강문수 삼성생명 총감독의 배려속에 독일행을 택했다. 독일 프로리그 립헬 옥센하우젠과 1년 임대계약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주전 에이스로 뛰며, 팀을 리그 1위에 올려놓았다. 1~3라운드 18경기에서 15승3패를 기록했다. 39명의 선수 가운데 승률 랭킹 2위다. 1위는 대만 추안치유안(18승3패), 3위는 독일 탁구영웅 티모볼(11승2패)이다. 옥센하우젠의 탁구 열기는 대단히 뜨겁다. 인구 8000명의 마을에서 주말마다 유승민의 탁구를 보기 위해 1000석에 달하는 관중석을 빼곡히 메운다. 올림픽 챔피언인 유승민은 유럽에서도 최고의 스타다. 탁구할 맛이 난다.

유승민은 코리아오픈을 선수생활의 마지막 국제대회로 삼았다. 6일 코리아오픈 본선무대에 서현덕 정영식 이상수 정상은 등 남자대표팀 차세대 후배 7명이 나섰다. 유승민은 대표팀 선수가 아닌 삼성생명 소속 선수로 출전했다. 형만한 아우는 없었다. '맏형' 유승민만이 유일하게 8강에 올랐다. 중국 일본 톱랭커들 사이에서 체면치레를 했다. 유승민에게 이번 대회는 의미가 같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국내 팬을 위한 마지막 무대를 고민해왔다. 고향 인천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유승민의 국내 마지막 오픈 경기 상대는 세계 1위 마롱이었다. 코리아오픈 8강에서 마롱을 상대로 투혼을 불살랐다. 경기후 악수를 나누고 있는 유승민과 마롱.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후배 강동훈, 강동수(이상 KGC인삼공사)를 잇달아 꺾고 올라온 마지막 8강전, 세계 1위 마롱을 만났다. 펜홀더 전형의 특성상 빨리, 많이 움직여야 한다. 세월이 흘러도,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유승민의 드라이브에는 투혼과 감동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스피드와 파워는 떨어졌으되, 정신력과 투혼은 오히려 강해졌다. "어렵겠지만 쉽게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약속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0대4 완패에도 관중들은 큰박수를 보냈다. 유승민은 "역시 마롱은 잘하더라. 세계 1위답다"며 칭찬했다. "언제쯤 다시 중국을 이길 수 있을 것같냐"는 질문에 "당장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가능하다"는 희망론을 펼쳤다. "중국만 생각해선 안된다. 일본 대만 홍콩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넘버2는 유지해야 한다. 중국을 마지막에 만나, 끈질기게 압박한다면 승산이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1~2회전 탈락은 안된다"며 후배들의 파이팅을 주문했다. "무너뜨리지 못할 벽은 아니다. 후배들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드시 기회는 온다. 이긴다고 독하게 마음먹길 바란다"며 웃었다.

마롱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는 유승민 앞에 미모의 아내 이윤희씨가 달려왔다. "잘했어요. 수고했어요." 땀범벅이 된 아빠를 보자마자 갓 돌을 지난 아들 성혁이가 방긋 웃으며 두팔을 벌렸다.

13일 오후 유승민은 가족과 함께 다시 독일로 떠난다. 4월21일, 5월5일 두차례, 사르브뤼켄과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승리한 팀은 6월2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한다. 소속팀을 우승시키고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선수생활의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노장의 투혼은 아름답다. 왕하오를 돌려세웠던, 그의 호쾌한 파워드라이브가 그리울 것같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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