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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은(35·KDB대우증권) 주세혁(31) 유승민(30,이상 삼성생명), 지난 10년간 녹색테이블을 호령해온 '걸출한 형님'들이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극도의 긴장감, 짜릿한 영광의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P카드로 런던 무대를 밟았다. 선배들에게 자칫 문제가 생길 경우 언제라도 나설 채비를 갖췄다. 행인지 불행인지,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P카드로 교체출전해도 좋겠지만, 정정당당하게 내 실력으로 티켓을 따서, 메달을 목에 걸겠다." 스무살 에이스 김민석(KGC인삼공사)의 첫 올림픽 소감은 '속깊은 다짐'이었다.
24일 인천 하얏트리젠시 호텔에서 열린 대한탁구협회의 런던올림픽 선수단 포상식에서 만난 김민석의 표정은 밝았다. 21일 회장기 실업탁구대회 남자단식에서 라이벌 서현덕을 4대1로 꺾고 올해 첫 우승을 꿰찼다. 지긋지긋한 슬럼프 탈출,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실업 2년차이던 지난해 승승장구했다. 5월 KRA컵 SBS최강전, 6월 전국남녀종별선수권, 8월 대통령기 남자단식에서 우승했고 12월 전국남녀종합선수권에서도 준우승했다. 그러나 올시즌 김민석은 슬럼프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말 KGC인삼공사 코칭스태프 해고 사태 이후 흔들렸다. 1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극도로 부진했고, 한때 20위를 맴돌던 랭킹은 60위까지 추락했다.
런던올림픽 직후 첫 대회인 전국종별선수권 대회에서도 김민석은 무기력했다. 우려의 시선이 불거졌다. 탁구인생의 위기였다. 회장기 실업탁구대회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여기서 더 무너지면 내년에도 영영 올라오지 못할 것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털어놨다.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상준 KGC인삼공사 코치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이 코치의 조언에 따라 탁구훈련 시간을 줄이는 대신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체력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만리장성 타도!' 탁구인들의 믿음과 기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민석은 "부담감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임감을 갖고 테이블 앞에 서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절친' 서현덕과 런던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금메달 한번 따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많은 탁구인들이 차세대 남자복식에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2010년 로테르담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김민석-정영식조, 올시즌 처음 손발을 맞춘 후 선전해온 김민석-서현덕조에 거는 기대다. 김-서조는 지난 5월 국제탁구연맹(ITTF) 프로투어 중국오픈에서 4강에 올랐고, 4강전에서 세계최강 마롱-장지커조에 2대4로 패했다. 두번째 출전인 일본오픈에서 당당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8월 중국 하모니오픈에서도 4강진출에 성공했다. 김민석은 '왼손전형' 서현덕에 대해 "죽이 잘맞는다"는 한마디로 평했다. 일단 복식에서 왼손전형은 움직임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서현덕은 수비가 좋고 침착하다. 범실이 적다. 빠르고 화끈하지만 분위기를 타는 김민석 탁구의 중심을 잡아준다. 김민석이 스스로 꼽는 장점은 '순간적 폭발력', 약점은 '지구력, 집중력'이다. "선발전같은 장기 레이스에서 종종 흔들린다. 약한 체력이 정신력에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체력훈련에 매진하겠다"며 해법도 제시했다. 또래 라이벌에게 배우고 싶은 점도 많다. "서현덕의 디펜스, 정영식의 근성, 이상수의 과감성, 정상은의 기본기"를 서슴없이 꼽았다. 지난 5월 코리아오픈에서 세계 1위 마롱을 꺾은 이상수와 공격성향이 비슷하지 않냐는 말에 "상수형은 나보다 훨씬 과감하다. 그렇게 거침없이 공격하기 때문에 중국을 잡는 '사고'도 치는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서로에 대한 비판과 칭찬도 거침이 없다. 함께일 때 두려움이 없는 절친이자 라이벌들이다. "이 세대가 언젠가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겨야죠. 이길 수 있죠"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중국과 맞설 땐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먼저 몇세트 내주고 나면 뒤집기는 불가능하다. 초반부터 흐름을 쥐고 가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김민석은 서현덕과 11월 독일오픈에 함께 나설 예정이다. 올시즌 ITTF 프로투어 남자복식에서 3차례 4강 진출을 이룬 김-서조는 독일오픈에 출전해야, 12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그랜드파이널 진출 자격을 충족하게 된다. 올시즌 고수들이 총집결한 무대에서 만리장성을 넘을 기회를 노린다. 2013년 부산아시아탁구선수권,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스타탄생을 위한 꿈의 무대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형보다 나은 아우를 만날 수 있을까.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