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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역시 '레전드'입니다.
한국 대중음악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가수가 바로 서태지입니다. 1980년대 록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 가요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데뷔곡 '난 알아요'는 무려 17주 동안 가요차트 1위를 휩쓸었죠. 천대받던 댄스 음악이 서태지의 등장으로 주류가 된 겁니다. 이후 '컴백홈' '하여가' '시대유감'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청소년의 우상'으로 군림했죠. 1996년 돌연 은퇴를 선언, 충격을 안겼던 서태지는 록커로 전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죠. 간간히 공연을 열긴 했지만 또다시 무성한 가설만을 남긴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서태지에게 '은둔형 록커'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그랬던 서태지가 달라졌습니다. 배우 이지아와의 비밀 결혼 및 이혼, 이은성과의 결혼, 득녀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며 철저하게 고수해 온 '신비주의' 이미지가 깨졌기 때문일까요. 무려 5년 만에 '크리스말로윈'으로 컴백을 선언하면서 예전과는 달리 토크쇼에도 얼굴을 비추며 대중과의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의 우상', '시대의 아이콘', '문화대통령', '신비주의 록커'에서 '삐뽁이 아빠'로 돌아온 서태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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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2년. '난 알아요'로 화끈한 데뷔를 알렸습니다. 서태지의 등장은 음악 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죠. 한때 거리를 청소하고 다녔던 통 큰 힙합 바지, 농구화 패션 등은 모두 서태지의 작품이죠. 이른바 '엑스(X) 세대'의 탄생을 알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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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