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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숲길, 오솔길, 도심길, 골목길 …. 세상의 길들은 다채롭지만 가까운 공원 산책로만큼 이롭고 소중한 길도 많지 않을 것 같다.
◇ 가을처럼 곱게 물들고 …
율동공원의 드넓은 주차장은 이미 출근 시간대에 거의 차 있었다. 김덕희 성남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산책하러 오는 분들이 많아요. 아침 일찍 여기서 운동한 뒤 출근하기도 하지요"라고 전했다.
'댕댕이' 셋을 이끄는 산보객, 늙으신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걷는 딸, 슬로우 조깅하는 젊은 부부, 찐득찐득한 황토를 발에 온통 묻힌 맨발 걷기 애호가….
벚나무 잎이 곱게 단풍 드는 공원 숲길에서 시민들은 깊어져 가는 가을을 닮고 있었다.
인구 100만 명에 육박하는, 수도권 대표 신도시 성남의 3대 공원 중 하나인 율동공원에서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영장산(해발 414m) 줄기와 숲, 분당저수지가 만든 그림 같은 호숫가 풍경이 눈과 가슴을 채운다.
도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광이 맑고 푸르러 자연공원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았다.
자연 친화적일 뿐 아니라 역사가 깃들어 있고, 문화 공간이 풍부한 율동공원에는 서울, 용인, 하남 등 인근 도시에서 찾아오는 탐방객이 적지 않았다.
율동공원은 81만 평에 달한다. 호수, 책테마파크, 생태학습원, 맨발 황톳길, 배드민턴장, 반려견 놀이터, 잔디광장, 분수대, 조각공원, 갈대밭 데크, 수변 카페, 3·1운동 기념탑, 야외무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번지점프대도 눈길을 끈다. 안전상의 이유로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번지점프대 일대는 수변 무대, 여름철 물놀이장, 겨울철 스케이트장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호숫가 오리 가족은 산보객들이 던져주는 먹이가 풍부해서인지 게으름을 한껏 즐기는 듯 나른해 보였다.
저수지 옆으로 약 1.8m의 데크길, 2.5㎞의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황톳길은 약 800m. 주차장에서 출발해 생태학습원을 지나 3·1운동 기념탑, 조각공원, 책테마파크 등을 돌아보면서 완보한다면 5㎞ 정도를 걷게 될 것 같다.
◇ '책, 세상의 배꼽'…국내 최초의 책 테마 공원
맨발 황톳길을 따라가면 왼쪽으로 조각공원이 펼쳐지고, 이어 책테마파크가 발길을 잡는다.
조각공원은 성남시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황톳길은 붐볐다. 규모가 꽤 큰 세족장, 신발장 등 관련 시설은 황톳길의 인기를 짐작하게 했다.
율동공원 책테마파크는 책을 주제로 한 공원으로는 국내 최초로 설립됐다.
테마파크의 또 다른 이름은 '책, 세상의 배꼽' 공원이다. 책 속에 미래를 열 지혜가 있고, 책은 세상을 담는 중심이라는 뜻일까.
대리석판에 미술가 임옥상, 건축가 승효상, 조경예술가 김인수, 시인 김정환 등이 만들었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계 거목들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단층으로 지어진 도서관 앞에 서 있는 '숲으로 북크닉' 알림판이 눈길을 끌었다.
책테마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나무 그늘이나 숲속에서 읽을 수 있게 깔개와 캠핑 의자를 대여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빌린 도서와 물품은 당일 반납하면 된다. 요즘 책은 경직된 분위기의 도서관 실내에서 탈출해 숲으로, 공원으로, 카페로 자유롭게 나다니는 듯하다.
◇ 그림같이 아름다운 지붕 '그린마루'
생태학습원에는 그린마루 정원이 있다.
'그린마루'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지붕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장애우들이 비장애인과 교류하면서 원예활동을 하는 치유 정원이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는 체험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루어가는 공간이다.
생태학습원에서는 식물관리 · 꽃장식· 판매 등의 전문 교육, 경험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높이는 직업체험프로그램, 영농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영농정기프그램, 영농현장실습 프로그램, 바리스타 교육사업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꽃꽂이, 분화식물 심기, 작물심기 등 원예와 영농 체험, 바리스타 교육을 토요일에 무료로 수강할 수 있었다.
텃밭, 정원, 온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린마루 정원은 그린 듯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장소였다.
◇ 성남 유일의 3·1운동 발생지
1919년 3월 27일 분당장터에서 3천여 명이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봉기했다.
당시 인구를 고려할 때 장터 시위의 규모는 컸다. 이 봉기는 하루 전날인 26일 율리 뒷산 모란봉에서 애국지사 등 100여 명이 봉화를 올리며 민족자존과 자주독립을 외친 데 뒤이어 일어났다.
밤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의 율리는 지금의 율동이다. 성남의 당시 지명이었던 광주의 3·1독립만세운동은 한백봉(1881∼1950) 선생, 천도교 교구장 한순회 선생, 초대 낙생면장 남태희 등이 주도했다.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한백봉 선생은 신간회운동, 물산장려운동, 농민운동 등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한백봉, 한순회 선생은 조선 시대 명문가였던 청주 한씨이다.
율동에는 과거 청주 한씨 집성촌이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율동공원에는 청주 한씨 문정공파 시조인 한계희, 그의 아들 한사문의 묘역과 신도비가 있다.
한백봉 선생의 집터는 저수지를 만들면서 이전했다. 성남 유일의 독립만세 운동 주창지였던 율리 뒷산에는 3·1운동 기념탑과 '태극의 울림' 조각이 건립돼 있다.
'태극의 울림'은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위대한 정신을 거대한 태극기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