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초록의 생기에 스트레스도 잠재울 풍미 '감태'

김형우 기자

기사입력 2020-03-03 15:06


◇'갯벌의 밥도둑'으로도 불리는 감태는 겨울철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리나라 서해안 청정 갯벌을 초록으로 뒤덮어 볼거리를 제공 한다. 특히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특유의 맛과 향이 압권으로, 스트레스도 잠재울 풍미를 지니고 있다. 사진은 태안 가로림만 갯벌에서 감태를 매고 있는 모습.



코로나19 사태로 계절의 변이조차 느끼기 어렵다는 요즘이다.

재택근무에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바깥 활동량이 크게 줄어든 탓도 있지만, 일단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도 더 그러하다.

3월 초순, 경칩(5일)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봄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바람도 차갑고 주변 풍광 역시 여전히 잿빛이다.

이 같은 간절기에 봄 느낌 물씬 나는 곳이 있다. 내륙에는 차밭이요, 바닷가는 감태밭이다. 두 곳 모두 초록의 싱싱함이 생기를 더한다.

특히 '갯벌의 밥도둑'으로도 불리는 감태는 겨울철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리나라 서해안 청정 갯벌을 초록으로 뒤덮어 볼거리를 제공 한다.

'감태(甘苔)'는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특유의 맛과 향이 압권이다. 갓 지은 쌀밥에 감태 한 장을 올려 싸먹게 되면 특유의 맛과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진다.

뿐만 아니라 컬컬했던 목을 말끔히 씻어준 듯 한 개운한 여운도 지속돼, 스트레스 많은 요즘 입맛을 되돌려 줄 별미로 권할 만하다.
글·사진 김형우 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잿빛 풍광 속에 만나는 초록빛 융단

이맘때 맛보면 좋을 제철미식거리를 들자면 단연 감태(甘苔)'를 꼽을 법하다. 특유의 달보드레 쌉쌀한 풍미가 입맛을 되살리기에 그만이다.

'가시파래'라는 또 다른 이름의 감태는 갈파래과에 속하는 녹조식물이다. 우리의 층남 태안, 서산, 전남 무안, 신안, 장흥 등 주로 서남해안 청정 갯벌에서 자생한다.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나고 그 향이 뛰어나 '감태(甘苔)'라는 이름을 얻었다.

감태는 겨울철 별미 해조류인 매생이 와는 좀 다르다. 질감부터가 거칠다. 올이 굵기 때문인데, 향도 한결 짙고, 색상은 밝은 초록빛을 띤다. 감태는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애용해 온 별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모양은 매산태(매생이)를 닮았으나 다소 거칠고, 길이는 수자 정도이다. 맛은 달다"고 적고 있다.

국내 대표적 감태 산지로는 서해안의 황금어장, 가로림만을 들 수 있다. 가로림만은 풍부한 어패류, 해조류가 자생, 양식되는 수산자원의 보고이다. 그 중에서도 충남 태안군 이원면 사창리(3리)가 감태 주산지다. 예전에는 마을 앞 저수지까지 바닷물이 들어차는 갯마을이었지만 이제는 간척농지가 펼쳐진 상전벽해의 터전이 되었다. 예로부터 감태가 많이 나는 포구라고 해서 과거엔 '태포(苔浦)'로 불렸다. 마을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젓만 떼면 갯벌에 나가 감태를 맷는데,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마을의 전통 생업이 되었다.
◇감태 채취
마을 주민 이을래 옹(73)은 "옛날 어르신들은 장화도 없이 감발치고 짚신 신고 얼음장 같은 갯벌에 그냥 나갔다. 지금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이 무렵 사창리 앞 갯벌에서는 목가적 풍광의 감태 수확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푸른 융단자락을 연신 들추듯 감태를 매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허리춤에는 광주리를 매단 노끈이 질끈 매어져 있다.

융단처럼 펼쳐진 감태를 뜯는 모습이 얼핏 수월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은 보기와는 딴 판이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은 몸을 가누기 조차 쉽지 않다. 거기에 찬 바닷바람은 피할 데 없고, 잠시 앉을 곳조차 없으니 뻘밭에서의 감태매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감태 채취는 간단치가 않다. 밑에 것은 질겨서 뿌리째 뽑지 않고 부드러운 윗부분 것만 조심스레 뜯어야 해 요령도 필요하다.

가로림만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는 고마운 평생직장이다. 겨울과 봄 사이엔 감태도 매고, 굴도 딴다. 꽃이 피면 바지락도 캐고, 낙지도 잡는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출근'을 해서 자식들을 다 키웠다.

초록의 생기에 껄끄러워진 미각도 돌린다 '감태'

채취한 감태는 현장에서 바닷물로 씻은 뒤 마을로 싣고 와 다시 깨끗한 민물로 세척한다. 사창리 감태가 고품격으로 통하는 것도 바로 민물 세척에 그 비결이 있다. 마을에 있는 옹달샘이 바로 그것이다. 옛 부터 '찬샘'이라 부르고 있는 이 샘에서 졸졸 흐르는 맑은 물로 감태를 떠야 모양이 고르고 건조 후 감태발에 달라붙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가정용 지하수나 다른 샘물로는 상품가치를 높일 수 없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감태를 채취하는 날이면 마을사람들이 찬샘에 모여 공동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이제는 찬샘 원수를 간이 상수도를 통해 각 가정으로 공급, 집에서 작업 하고 있다. 주민 고령화로 인한 작업환경 개선차원이다.
◇전통 방식의 감태건조
이을래 옹은 "철분이 많은 물에 감태를 씻으면 감태발에 달라붙어 제 모양을 내지 못하는데 찬샘은 철분량이 적당한 것 같다"며 "감태 생산 가구당 2000~500만 원 가량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세척을 마친 감태는 물감태로 포장해 냉동보관하거나 건조시킨다. 감태김은 발로 얇게 떠 건조장에서 말린다. 예전에는 볕이 좋은 날 마을 양지바른 둔덕에 널어 자연 건조시켰지만 요즘은 흔치 않은 풍경이 되고 말았다.

무침용으로 쓸 감태는 두툼하게 말린다. 감태를 말리면 단맛이 더해진다.
◇감태김
감태는 어떻게 먹어야 제 맛일까? 주로 무침으로 많이 먹는다. 감태와 무채를 섞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낸다. 산지에서는 감태김치도 담가 먹는다. 조선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 멸치액젓, 깨 등을 넣고 버무린 후 사나흘 숙성 시킨 뒤 상에 올린다. 밀가루 반죽에 섞어 부쳐 먹는 감태전도 별미다. 감태김은 굽지 않고 그대로 밥을 싸 먹는 게 맛나다. 구우면 쉽게 타거나 자칫 쓴맛이 돌기 때문이다.


◇감태 무침
한편, 사창 3리 40여 가구 중 감태를 채취하는 어민들은 7가구 남짓. 11월부터 이듬해 4월 초순까지 너댓달 동안 1가구당 1000톳(100장 묶음) 남짓 생산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감태는 100장 묶음 한 톳 당 평균 3만5000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장에서는 4만원을 넘게 받는다. 모두 자연산인 탓에 입소문을 듣고 찾는 미식가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태안에서는 서부시장을 찾으면 감태를 구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구운 감태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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