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의 달빛은 어둠, 질병, 재액을 떨쳐내는 밝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귀한 날로 여겼다. 또한 설날이 집안의 명절인데 비해 정월 대보름은 마을의 명절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줄다리기, 고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다.
봄을 앞두고 벌이는 마지막 잔치이며, 농한기라 세시풍속도 가장 성행했다. 민속학자 최상수의 '한국의 세시풍속'에 의하면, 1년 동안 열리는 세시풍속 189건 중 대보름 행사가 40여건에 달했다. 1년 행사의 5분의 1이 넘게 몰린 셈인데, '나무시집보내기(嫁樹:가수)'라는 에로틱한 풍속도 있다.
조선시대 문인 김려가 쓴 '담정유고(潭庭遺藁)'에는 '보름날 새벽 수탉이 울 때 (남성의 심볼 모양을 닮은) 돌을 과일나무의 갈라진 두 가지 사이(여성의 심볼을 의미)에 단단히 끼워 놓는다. 이렇게 하면 열매가 많이 열린다. 가수하기 좋은 나무는 자두, 복숭아, 살구, 매화, 대추, 감, 석류, 밤 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도끼로 나뭇가지 사이를 찍는 시늉을 하며 "올해 열매 안 열리면 내년에는 잘라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유실수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결합의식을 통해 나무의 성적 욕구를 해소(?)해 준 것인데, 과학적으로도 영양분이 뿌리로 가는 것을 막아 열매가 많이 열리도록 해준다.
나무시집보내기가 모방주술행위라면 '답교(踏橋)놀이'는 섹슈얼리티가 넘쳐나는 풍속이다. 대보름날이면 광통교를 비롯한 청계천의 열 두 다리를 건너며 액운을 쫓았는데, 다리(橋)를 밟는 행위를 통해 재앙을 물리치고, 다리(脚)가 건강해진다는 미신적 신앙에서 유래했다.
자식 낳기를 간절히 바라는 여인들은 다리를 오가다 보름달이 뜨면, 양기와 음기가 가장 왕성할 때라며 정기를 취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도 방야(放夜)라 해서 이 날은 남대문을 비롯한 모든 문을 열어두었는데, 새벽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답교놀이 중 눈이 맞은 남녀가 야합(野合)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도 했는데, '사내 못난 것 북문에서 호강 받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풍수지리에 따라 서울의 북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은 가뭄이 심한 때를 제외하고는 닫혀있었다. 북은 음(陰)을 의미하기 때문에 숙정문을 열어 두면 음풍이 거세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굳게 닫혀있던 숙정문을 대보름 전후로 3일간 활짝 열어 나들이를 허용했는데, 1년 내내 집안에 갇혀 지내던 여성들에게는 그야말로 '해방의 날'이었다. 이 기간 동안 치장한 여인네들과 한량들로 숙정문 일대가 북새통을 이루었다.
달의 정기가 가득한 보름밤은 여성들의 성욕이 절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다리는 남성의 심볼을 상징한다. 따라서 답교놀이는 다산(多産)과 무병장수, 그리고 풍요를 기원한 풍속이다. 이를 통해 유학을 숭배하던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활달하고 건강한 성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김재영(퍼스트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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