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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가 또 하나의 대기록을 세우며 K리그 정상에 섰다. '스플릿 시스템 돌입 전 조기우승'이다.
이날 무승부에도 전북은 23승5무4패(승점 74)를 기록, 같은 날 제주에 덜미를 잡힌 2위 경남(승점 55)과의 격차를 19점으로 벌리며 남은 6경기에 상관없이 자력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야말로 '언터처블'이다. 전북은 지난 10년 사이 무려 6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창단 첫 우승 트로피에 입 맞췄던 전북은 2011년, 2014년, 2015년, 2017년에 이어 팀 통산 여섯 번째 별을 달았다.
이번 우승이 더 값진 이유는 또 있다. 지난 2013년부터 문을 연 스플릿 시스템이 작동되기 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최초의 팀이 됐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가장 빠르게 우승을 확정 지은 팀도 전북이긴 했다. 2014시즌 35라운드였다. 조기우승이긴 했지만 스플릿 시스템에 돌입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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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은 2005년 여름 전북을 맡아 13년 만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팀을 만들었다. 일각에선 "국내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데려다 놓은 팀에서 누가 감독을 하든 최 감독만큼 못하겠냐"는 시샘 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개성 강한 스타들을 '원팀'으로 묶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최 감독에겐 반드시 지키는 철학이 하나 있다. 선수단 운용 면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베테랑'이다. 고참선수를 절대 퇴물 취급하지 않는다. 또 베테랑들이 솔선수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만 39세 이동국이 전북 입단 이후 10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최 감독의 믿음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부분이다.
최 감독의 철학 덕분에 전북은 베테랑들이 이끌어가는 팀이 됐다. 젊은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고참들의 솔선수범을 배우게 되고 그렇게 전북만의 DNA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DNA는 전북의 가장 큰 힘이다. 시즌 중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분위기를 타면 살려나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전북이 연패가 없고, 상위권 또는 라이벌팀과의 결전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최 감독은 '지도자'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경기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선수를 관리하는 감독의 역할은 당연히 충실히 이행한다. 뿐만 아니라 이젠 '최고의 관리자'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 감독은 전북 봉동에 위치한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경비원부터 식당 아주머니, 잔디관리사, 버스 기사까지 자신의 식구처럼 챙긴다. 마치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처럼 말이다. 퍼거슨 감독이 맨유를 이끌 당시 맨체스터 캐링턴 훈련장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훈련장 관리인들 챙기기였다. 최 감독은 젊은 지도자들의 롤모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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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2014년부터 스포츠에서 서서히 발을 뺐다.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다른 기업구단들도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현대는 달랐다. 차별화를 택했다. 특히 전북 현대의 모기업 현대자동차는 점점 악화되는 판매실적에도 주머니를 닫지 않았다. 기존 운영비를 유지했다. 전북은 수년째 선수단 인건비로만 120~150억원을 사용하고 있다. 시즌이 종료된 뒤 공개되는 K리그 구단별 연봉 현황에서 압도적인 지표를 자랑한다. 국내선수 연봉 랭킹 1위부터 5위를 싹쓸이 했다. 외국인 선수들에도 총 30억원 정도 사용하고 있었다. 전북은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워너비 구단'으로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투자를 줄인 구단들의 반사이익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북의 뚝심 있는 투자는 결실을 맺고 있다. 국내와 아시아에서 축구단이 떨친 위상은 무형적으로 모기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 축구로 브랜드 가치를 유지, 향상시키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로스포츠 부문 브랜드대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전북 현대와 현대차는 'K리그의 교과서'가 됐다. 울산=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