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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축구의 진수가 조금 늦었지만 막판에 완성됐다. 그는 이번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면서 기본 전력이 더 강한 상대를 어떻게 무너트릴지를 늘 고민했다.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한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고 싶었다. '선 수비 후 역습' 축구로 '통쾌한 반란'을 이루고 싶었다.
신태용 감독과 태극전사들은 조별리그 3경기 만에 그들이 꿈꾼 축구로 경기력과 결과를 모두 달성했다. 1승2패로 조 3위. 비록 16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패장 독일 뢰브 감독은 "한국은 훌륭했다. 한국은 빈틈이 없었다. 많이 달렸고, 또 끝까지 공격했다"면서 "패배가 충격적이다. 너무 실망했고 난 쇼크를 받았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은 독일전에 앞서 2패로 사실상 조별리그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승리가 절실한 독일과의 마지막 일전을 남겨두었다. 모두가 독일의 큰 승리를 예상했다. 독일의 큰 점수차 대승을 예상하는 베팅 전문가들도 있었다. 신 감독은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전력의 열세를 인정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마치 그때 그는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보였다. 태극전사들은 위기에서 매우 강하게 하나로 뭉쳤다. 주장 기성용(종아리)과 베테랑 수비수 박주호(햄스트링)가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장현수는 1~2차전 수비 실수로 맹비난을 받아 심적으로 충격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표 선수들은 새 주장 손흥민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선 수비 후 역습'이 통하려면 먼저 실점해선 곤란했다. 태극전사들은 몸을 아낌없이 던졌다. 특히 김영권 윤영선은 수 차례 육탄방어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또 경기 MVP(MOM)에 뽑힌 골키퍼 조현우는 실점과 다름없는 슈팅을 손에 꼽을 정도로 쳐냈다. 손흥민만 공격 진영에 남아 있고 10명 전원이 수비를 했다. 14명(3명 교체 포함)이 뛴 거리가 총 118㎞였다. 독일(115㎞) 보다도 3경기 중에서도 가장 많았다. 볼점유율(30<70)에서 크게 밀리면서 계속 공격을 막는 입장이었다. 득점이 다급했던 독일 선수들은 시간이 갈수록 서둘렀고 골결정력이 떨어졌다.
신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독일도 승리가 필요했다. 서두를 것으로 봤다. 그걸 역이용하면 우리도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난 놈' 신태용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비난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레오강 훈련캠프서 가진 볼리비아와의 경기를 마치고 '트릭' 발언을 했다가 맹비난을 받았다. 또 전술훈련을 단 한번도 공개하지 않으며 '정보전'에 지나칠 정도로 매달렸다. 한 차례 체력훈련을 했다가 팀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는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신 감독은 "속상한 부분이 있었다"고 속내를 살짝 내비쳤다. 그는 목표인 16강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세계 최강을 막판에 극적으로 무너트리면서 세계 축구사의 한 획을 그었다. 신태용 축구가 '한칼'이 있다는 걸 막판에 입증한 것이다.
카잔(러시아)=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