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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빅클럽 노리는 제주, 운영진부터 변해야 한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1-08 22:23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이창민(제주)의 아랍에미리트(UAE)행이 결국 좌절됐다.

UAE 알 샤밥 이적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이창민은 메디컬테스트까지 마쳤지만, 마지막 협상에서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지난해 7월 UAE 알 와흐다 이적에 근접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이창민은 다시 한번 해외진출에 실패했다. 이창민은 제주가 전지훈련을 진행 중인 태국 치앙마이에 합류할 예정이다.

처음부터 아쉬운 목소리가 들렸던 이적 과정이었다. 제주는 사실상 선수 영입 없이 스토브리그를 마치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시즌 준우승을 차지한 스쿼드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내실 다지기를 통해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주 구단 운영진은 핵심 자원인 이창민의 이적을 '갑자기' 허용했다. 코칭스태프 역시 이적 합의가 나기 몇일 전에야 협상 사실을 알 정도로 급박하게 진행됐다. 당연히 코칭스태프가 원하는 이적도 아니었다. 물론 선수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제안이기는 했지만, 우승을 노리는 팀 답지 않은 결정이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제주는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다. 통상적으로 핵심 자원의 이적을 허용할 경우에는 대체자에 대한 준비가 돼 있을때다. 하지만 이창민 이적 과정에는 이런 부분이 완전히 생략돼 있었다. 당초 원했던 임선영은 일찌감치 전북행을 결정했고, 손준호는 연봉이 너무 비쌌다. 만약 이창민의 이적이 확정됐다면, 제주에 남아있는 중앙 미드필더 자원은 권순형 이찬동 이동수, 셋 뿐이다. 중원의 패싱게임을 통해 경기를 풀어가는 제주 스타일 자체를 무너뜨리는 판단이었다. 이 결정의 책임은? 운영진이 아닌 감독이 진다.

제주(전신 유공)는 1983년 K리그 창단 멤버다. 올해로 35년이나 됐다. 하지만 함께 출발했던 포항, 울산 등과 달리 제주는 빅클럽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정규리그 우승도 1989년 단 1번 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주 연고 이전 후로 범위를 좁혀보면 운영진의 소극적이고, 근시안적인 행정이 가장 큰 이유다. 이전 후 첫 번째 황금기라 할 수 있었던 2010년 준우승 이후 제주는 가까스로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가장 중요했던 2011년의 실패 때문이다. 보강은 커녕 핵심이었던 구자철 김은중, 네코가 차례로 팀을 떠났다. 특히 시즌 중 수원으로 떠난 박현범의 이적이 결정적이었다. 제주는 결국 9위에 머물렀다. 당시 수장이었던 박경훈 전 감독도 "2010년의 기운을 이어갔어야 했다. 보강은 고사하고 핵심들을 내주고 다시 리빌딩해야 하니 팀이 연속성을 가지지 못했다"고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올해와 묘하게 오버랩이 된다. 우승을 차지한 전북이 임선영 손준호 영입을 시작으로 아드리아노, 티아고, 홍정호 등을 노리는 것과 비교하면 제주의 잠잠한 행보는 더 아쉽다. 축구계에서는 프런트와 선수단 사이의 불화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제주는 지난 몇 년간 성장을 거듭해왔다. 조성환 감독 부임 후 서서히 강팀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2015년 상위스플릿 진출, 2016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 확보, 2017년 준우승까지 매 시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걸맞는 행정능력을 갖췄는가' 하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단순히 선수 영입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로 시계를 돌려보자. 지난해 제주의 이슈 중 '용인 연고 이전 소문'과 '조성환 감독의 재계약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팬들과 언론은 이에 대한 명확한 제주의 생각을 요구했다. 당연한 요구였다. 하지만 제주 운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용인으로 간다고 말한적이 없는데 왜 이 소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나.", "내부적으로 조성환 감독과 함께 하기로 했는데 왜 논란이 나는지 모르겠다." 두 대답 모두 팬들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프로구단은 이슈에 더 적극적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 물론 제주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젊은 사원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헌신으로 만든 결과다. 이와 달리 제주 프런트의 윗선에 있는 이들은 소통에 너무 소극적이다.

이런 태도는 선수단 운영에도 이어진다. 알려진 대로 제주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 일가견이 있다. 네코, 산토스, 자일, 페드로, 로페즈, 마르셀로, 마그노 등 제주가 뽑은 외인은 K리그에 큰 임팩트를 남겼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제주가 외국인 선수로 재미를 본 것은 오직 경기장 내에서 뿐이었다. 로페즈의 예를 들어보자. 제주는 2015년 임대로 로페즈를 데려왔다. 로페즈는 시즌 초반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제주는 완전 영입을 추진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시즌 막판 부랴부랴 협상테이블을 꾸렸지만, 전북에 뺏기고 말았다. 임대라 이적료도 벌지 못했다. 제주는 전북이 선수를 뺏어갔다고 항의했지만,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도 영입하겠다는 판단을 내리지 못한 제주 운영진의 잘못이었다. 지난 시즌 임대로 영입해 초반 좋은 활약을 펼치자 곧바로 완전영입에 성공했고, 이후 500만불 이상으로 몸값이 뛴 경남의 말컹 사례와 정확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우승경쟁이 한창이던 지난 시즌 조 감독과 재계약을 논의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제주 운영진은 "SK는 시즌 후 재계약을 해왔다, 과거 장기계약의 폐해가 있었다"는 말로 재계약을 미뤘다. 워낙 좋았던 기회였기에 제주 운영진의 소극적인 선택은 두고두고 아쉽다. 감독 재계약은 그간 공로에 대한 칭찬의 의미이자, 팀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결정적인 순간, 조 감독 재계약을 통해 팀의 분위기를 바꾸는 효과를 기대해 볼 만도 했지만, 제주 운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의 말대로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결국 제주는 팀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감독과 '어색한' 모습 속 재계약을 맺었다. 조 감독은 제주가 재계약을 해줘야 하는 감독이 아니라, 꼭 재계약을 해야 하는 감독이다. 제주 운영진의 이런 태도라면 무리뉴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와도, 호날두나 메시를 임대로 영입해도 오랫동안 이들을 품을 수 없다.

올 시즌 제주는 빅 클럽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는 감독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운영진도 이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제주는 새해, 직제를 개편했다. 우승이란, 빅클럽이란 목표를 세웠으면, 더 적극적이고, 더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 제주에 가장 필요한 것, 원대한 비전에 어울리는 행보다.


스포츠2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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