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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운명을 결정할 '박싱데이(Boxing Day)'가 다가왔다.
EPL에서 박싱데이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일반인에게 박싱데이가 '1년을 정리하는 휴식의 날'이라면 EPL 선수에게 박싱데이는 '1년 농사를 결정할 가장 바쁜 날'이다. 다른 리그가 크리스마스를 즈음에 3주 정도의 휴식기를 취하는 것과 달리 EPL은 크리스마스 휴식기가 없다. 오히려 박싱데이에 무조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전통 때문에 최악의 스케줄이 만들어진다. 주말 경기를 치르고 주중 박싱데이 경기를 치르고 또 주말경기를 치러야 하는 박싱데이 일정은 언제나 EPL팀들의 고민거리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박싱데이를 둘러싼 속설 때문이다. '박싱데이 주간 선두를 지킨 팀은 우승을 차지하고, 강등권에 머문팀은 챔피언십으로 추락한다.' 실제 데이터가 입증한다. 지난 8시즌 동안 박싱데이 주간에 선두를 달린 6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EPL이 출범한 후 26시즌 중 크리스마스 챔피언이 실제 챔피언으로 이어진 것도 14번에 달한다. 강등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박싱데이 주간 강등권에 있던 헐시티, 선더랜드는 어김없이 강등됐다. 물론 박싱데이 때문에 우승하고, 강등된 것은 아니겠지만 살인 스케줄을 어떻게 넘겼는지가 그 팀의 현주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박싱데이 주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뭐니뭐니 해도 선두 맨시티의 행보가 주목된다. 개막 후 18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맨시티(승점 52)는 2위 맨유(승점 41)와의 승점차를 11점으로 벌렸다. 우승 보다는 무패 우승 여부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싱데이까지 잘 넘긴다면 가능성이 있다. 본머스, 뉴캐슬, 크리스탈팰리스, 왓포드라는 해볼 만한 상대에 스케줄도 수월한 편이다.
4위 싸움과 강등권 경쟁도 관심거리다. 유럽챔피언스리그 마지노선인 4위 리버풀(승점 34)부터 7위 토트넘(승점 31)까지 승점차는 불과 3점. 5위 아스널(승점 33), 6위 번리(승점 32)가 빡빡하게 붙어 있다. 박싱데이 결과에 따라 순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강등권 경쟁은 더 뜨겁다. 12위 사우스햄턴(승점 18)부터 가시권에 있다. 강등의 끝자락인 18위 뉴캐슬(승점 15)과의 승점차가 3점 밖에 되지 않는다. 한 경기 결과로 순위가 뒤집힐 수 있다. 강등권 팀들은 일단 크리스마스만이라도 강등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4경기 연속 득점포를 가동하다 1경기를 쉰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 등 코리안 프리미어리거들도 박싱데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주전에서 밀린 이청용의 경우, 빡빡한 일정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신태용 감독은 현장에서 이들의 활약을 유심히 지켜볼 계획이다.
과연 EPL팀들은 운명의 박싱데이 기간 동안 박스 안에 어떤 결과물을 담아갈까. EPL 팬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한 주가 다가오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