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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친구, 빨리 유니폼 입히고 사진찍어. 계약서 사인도 받고…."
이러한 울산 관계자들의 호들갑(?)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축구판에서도 이른바 노쇼(No-Show)의 폐습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노쇼는 소비자들이 숙박, 음식점 등에 예약을 해놓고 아무런 통보도 없이 예약 부도를 일으키는 행위를 말한다. 관련 업자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으면 조선일보가 노쇼 근절 캠페인을 벌여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한데 수쿠타-파수의 원소속팀 측에서 돌연 마음을 바꿨다. 중동 리그에서 더 많은 이적료를 제시받았기 때문이다. 울산이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자 몸값이 급상승한 것이다. 일종의 가계약 상태라 대항할 근거 없이 고스란히 빼앗겨야 했다.
구단이 일처리를 꼼꼼하게 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사람 장사'에서 신뢰가 생명이라 가계약서에 위약금 조항 따위를 요구했다가는 상대의 심기를 거슬러 거래 무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상대를 믿고 협상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란 점이다. 어떤 선수는 입단 희망 영상까지 찍어서 보내주고 한국행 비행기 티켓까지 보여줬다. 울산은 "다 됐다"고 생각했다. 한데 입국 예정일에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랴부랴 알아보니 선수가 마음이 바뀌어 노쇼를 해버린 것. 철석같이 믿고 있던 울산은 어이가 없었지만 다른 곳에서 높은 가격에 입단 제의를 받을만큼 좋은 선수를 골랐다는 안목을 애써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브라질에서 쓸만한 선수를 찾아 입단 절차를 거의 완료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도 있다. 에이전트 2명이 얽혀 선수 소유권 분쟁이 생기면서 지체되는가 싶더니 완전 이적료로 약속한 금액을 임대료로 바꿔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뒤 노쇼를 해버린 것.
울산이 올시즌 상위권 팀 가운데 외국인 선수 덕을 제대로 보지 못한 데에는 이처럼 말 못할 속앓이가 있었다. 결국 울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용병은)와야 온 것이다", "메디컬테스트를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사인부터 받아놓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일본 출신 아베 타쿠마를 영입하는 과정도 그렇다. 일본 현지 언론은 지난 주부터 벌써 타쿠마의 울산행을 확정적으로 보도했는데도 울산이 10일 돼서야 공식 발표한 것은 '노쇼 트라우마'때문이었다고 한다.
울산 관계자는 "이제서야 올시즌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 완성체를 이뤘다. 올해 유독 영입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액땜으로 생각해야 겠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