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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55)이 드디어 해냈다. 축구 행정가로 변신 6년 만에 평의회 의원으로 FIFA(국제축구연맹) 집행부에 입성했다. 전세계에 단 37명 뿐인 FIFA 최고 의사결정기구 평의회의 구성원이다.
둘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11년부터다. 정몽규 회장은 곽정환 총재에 이어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에 올라 K리그를 이끌기 시작했다. 구단주를 넘어 축구 행정가로 변신했다. 정몽준 전 부회장의 조언도 영향을 미쳤다.
이 당시부터 정몽준 전 부회장은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2011년 1월 FIFA 부회장 선거에서 낙마했다. 17년 동안 지켜왔던 FIFA 부회장 자리를 잃었다. 이후 그는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다.
하지만 정몽준 전 부회장의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2015년 부패 혐의로 파국을 맞은 제프 블래터 FIFA 회장 후임 선거에 출마의사를 밝혔다가 역풍을 맞았다.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5년 자격 정지 제재를 받았다.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유치과정에서 정몽준 부회장이 FIFA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이익제공'으로 해석했다. 정 전 부회장은 '반 블래터'로 FIFA의 개혁을 주장했다가 블래터 쪽으로부터 역공을 당한 것이다. 날개가 꺾인 정몽준 전 부회장은 명예 회복을 위해 지난 4월 FIFA 제재에 대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국제무대에서 재기를 모색중인 정몽준 전 부회장은 한국 축구의 큰 발전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와 4강 신화로 한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축구를 통해 온 나라와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한국 축구계의 거목이다.
그러나 그는 비리로 얼룩진 FIFA의 개혁에 칼을 대는 과정에서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함께 세계 축구를 이끌었던 블래터 전 회장, 미셸 플라타니 유럽축구연맹 회장 등과 동시에 주류에서 밀렸다. 정몽준 전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도 지난 3월 선거에서 패해 8선에 실패했다.
FIFA는 정몽준 전 부회장이 힘을 쓸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미국과 스위스 사법당국의 사정 칼날이 작용, FIFA의 내부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젊은 중도파인 잔니 인판티노 새 FIFA 회장(47)은 안정 속에 개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FIFA는 축구팬들에게 깨끗한 이미지를 새로 심어주고자 한다. 또 떨어져 나간 세계적인 스폰서를 다시 모셔오려고 한다. FIFA가 부패 혐의로 흔들리기 전엔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FIFA와 손잡고 싶어했지만 지금은 파트너들이 초라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을 포함 총 7개다. 현대차는 FIFA가 크게 흔들릴 때도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FIFA는 과거와는 또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도 새롭게 진영을 꾸리고 싶어한다. 이런 변화된 환경 속에서 정몽규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몽준 전 부회장과 또 다른 리더십의 소유자인 만큼 또 다른 방향에서 국제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문가들은 "정몽규 회장이 정몽준 전 부회장과 다른 색깔의 리더인 것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몽규 회장이 더 조용하며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편이다. 주변의 도움을 받지만 관계자들을 대동하지 않고 직접 움직일 때도 많다. 영국(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할 때 빠진 축구의 매력에 이끌려 걸어온 축구 행정가의 길. 정몽규 회장은 최근 "우리나라가 북한을 포함해 중국, 일본과 2030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고 싶다"는 큰 포부를 밝혔다. 그는 FIFA 총회(바레인)에 참석한 후 12일 귀국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