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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컵]아들 차두리가 걸어온 길, 아버지 차범근과는 달랐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1-26 16:45 | 최종수정 2015-01-27 06:19



"한국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이게 그 자리가 돼서 감사하다. 뜻 깊은 자리다."

뭉클한 소감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이었다. 지난달 1일이었다. 차두리(서울)가 생애 첫 K리그 개인상을 수상한 후 밝힌 소감이다. 그는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11 부문 오른쪽 수비수로 선정됐다.

'서른 다섯' 차두리가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 물결치고 있다. 그는 2015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다. 2대째 이어진 태극마크와 '차붐가(家)'의 인연도 막을 내린다.

이제 단 한 경기, 결승전만 남았다. 차두리는 26일 시드니 호주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일조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90분간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상대의 슈팅에는 육탄 방어, 역습시에는 폭풍 질주가 재연됐다. '맏형'의 존재감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슈틸리케호는 이라크를 2대0으로 꺾었다.

차두리는 1980년 7월 2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세상과의 첫 만남은 '차범근 아들'이었다. '차두리'가 아닌 '차범근 아들'로 더 유명했다. 숙명이었다.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은 현역 시절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유럽을 호령했다. 1세대 유럽파였다. 빅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시즌 동안 308경기에 출전, 98골을 터트렸다. 1980년에는 프랑크푸르트, 1988년에는 레버쿠젠 소속으로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72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도 출전했다. A매치 121경기에 출전해 55골을 터트렸다. 차 감독은 1989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26년이 흘렀다. 차 감독보다 뛰어난 토종 공격수는 그 전에도, 지금도 없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축구 선수 길로 들어선 차두리, 그러나 그림자는 컸다. 2001년 11월 처음으로 A매치에 데뷔했을 때는 '차범근 후광'이라는 시샘도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세상과 싸움을 시작했다. 고정관념을 털어내기 위한 고독한 투쟁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그는 그 해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곧바로 빌레펠트로 임대돼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 코블렌츠, 프라이부르크를 거쳐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기성용과 함께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었다. 2012~2013시즌 뒤셀도르프로 이적한 그는 2013년 K리그 FC서울로 다시 둥지를 옮겼다.

팀을 옮긴 숫자만큼 굴곡의 연속이었다.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 포지션도 변경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말을 갈아탔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최종엔트리 승선에 실패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차미네이터'라는 돌풍을 일으키며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도 인연이 아니었다. 그라운드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2회 연속 월드컵 원정 16강에 진출에 실패하자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함께 아파했다.

현역과 은퇴의 갈등 끝에 종착역에 다다랐다. "아시안컵은 내가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대회다. 아시안컵은 내게 또 다른 도전이다. 월드컵에서 많은 분들을 실망시켰는데 이번에 한국 축구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겠다." 약속이 현실이 되고 있다.

차두리는 독일에서는 230경기에 출전, 18골을 터트렸다. 스코틀랜드는 43경기에 출전, 2골을 기록했다. K리그에선 79경기에 출격했다. A매치에서는 73경기에서 4골을 기록 중이다. 아버지를 닮아 골격과 파워는 타고났다. 기술은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가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부한 경험까지 더해져 완숙미를 뽐내고 있다.

차 감독은 10대 때인 1972년 태국아시안컵, 한 차례 출전했다. 어린 나이지만 주전 자리를 꿰찼다. 결승까지 올랐다. 하지만 마지막 고개를 넘지 못했다. 이란에 1대2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차두리는 최후의 무대에서 아버지가 못 이룬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한다.

차두리와 아버지 차범근은 부자지간을 넘어 때론 사제, 때론 친구다. 허물이 없다. 다만 그라운드에선 경계가 명확해졌다. 차두리는 더 이상 아버지의 그림자를 떠올릴 필요가 없어졌다. '축구 선수' 차두리의 족적은 차범근과는 또 달랐다. 그 또한 새로운 역사였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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