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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비를 넘었다.
또 다른 고비는 부족한 훈련시간이었다. 아시안게임 첫 경기의 2주 전 소집으로 발맞출 시간이 부족했다. 이 감독은 프로축구연맹 관계자와 만나 1주일의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지만 현실에 부딪혔다. 결국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 구성에서도 계획이 틀어졌다. 자신이 구상한 선수들을 데리고 아시안게임에 나설 수 없었다. 연령대 대표였던 손흥민(22·레버쿠젠)의 차출이 끝내 불발됐다. 레버쿠젠 측에 두 차례 차출을 위한 공문을 발송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명주(24·알아인)의 와일드카드 발탁도 벽에 막혔다.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보강을 해야 할 다른 포지션이 많았기 때문에 손흥민과 이명주의 공백은 더없이 아쉬웠다.
뚜껑이 열렸다. 심적 부담이 컸다. 팬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라오스, 홍콩을 잇따라 격파했음에도 골결정력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터닝포인트는 일본과의 8강전이었다. 비난 여론이 돌아섰다. 팬들은 '숙적' 일본에 맞춤형 전술로 팀을 4강으로 이끈 이 감독의 리더십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감독은 연령대의 대표팀을 이끌며 10차례 한-일전을 무패(8승2무)로 장식했다. 이 감독이 '축구 이순신'으로 자리매김한 순간이었다.
태국과의 4강전에서도 이 감독의 승부수가 빛났다. 사우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부상 한 '고공 폭격기' 김신욱(울산)을 아꼈다. "4강전에선 김신욱을 투입할 시간이 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려는 일종의 심리적 연막이었던 것이다.
이 감독은 2일 마지막 평가를 받았다. 북한과의 결승전이었다. 결과는 환희로 마무리됐다. 우승 후보로 꼽힌 북한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직접 지도했던 선수들과 함께 일군 금메달이라 더 값졌다. 스스로 검증을 받길 원했던 '도전자' 이 감독의 아시안게임 성적표는 'A+'였다. 리우올림픽대표팀 사령탑도 이 감독이 맡는 것이 순리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