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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자신을 미워하고 기억하라고. 지난날의 과오를 씻기엔 너무나 부족한 것임을 잘 알지만 지금 흘리는 거짓 없는 땀방울이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후회했지만 그땐 이미 늦었어요. 축구계와 가족, 지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충격에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멍하니 살았죠. 평생 축구만 하고 살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에게 큰 실망을 했어요.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세상의 따뜻함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어요. 그리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속죄의 기회를 기다리며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을 했어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내일이었지만 오주현은 '축구'라는 단어를 자신의 머리속에서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되뇌이고 되뇌였다. 봉사활동도 성실히 계속 참여하며 과거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축구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 진심이 통했던걸까. 대한축구협회는 사안이 경미했고 사회봉사활동을 성실히 한 점을 인정해 오주현의 징계기간을 6개월 감면했다.
"감독님과 동료들이 허물없이 편하게 대해 주지만 내 존재로 인해 팀에 손해를 끼칠까봐 아직도 걱정돼요. 저의 그릇된 선택으로 상처를 받은 팬들에게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럴수록 속죄하는 마음으로 뛰고 또 뛰고 있어요. 고향팀 제주에서 속죄의 기회를 얻고 그라운드에서 다시 팬들에게 용서를 빌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고맙습니다."
오주현은 어렵사리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징계기간 동안 개인 훈련을 게을리하지않은 그는 제주 합류 후에도 구슬땀을 흘렸다.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는 휴식을 줄 때도 개인 운동에 힘썼다. 현역시절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명성을 날렸던 박경훈 감독은 자신과 포지션을 같은 오주현의 재기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 결과 오주현은 3라운드 대전 원정(1대1 무)에서 교체 출전한 데 이어 4라운드 부산과의 홈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지 몰랐습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은 제가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퇴장을 당한 곳이라서 좋은 추억이 있지 않았는데 지금은 제게 가장 소중한 곳이 됐어요. 저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비난과 야유도 달게 받겠습니다. 축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한편 제주와 오주현은 승부조작 근절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제주는 부정 방지 활동 교육을 연 4회(연맹 주관 2회, 구단 자체 2회) 실시하고 지난 8일 선수, 코칭 스탭, 임직원 등 선수단 전원을 대상으로 부정 방지 서약서를 작성했다. 또한 부정 방지 포스터 게시, 암행 감찰관 제도 운영, 1대1 면담, 클린센터 및 Hot Line 운영, 신고 포상 및 자진 신고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오주현은 자신의 과오와 경험에 기반하여 승부조작 근절 도우미를 자처했다.
"혹시 승부조작의 유혹을 받고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승부조작은 본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평생 상처를 안겨준다고. 더 이상 저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활동이나 행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축구는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많은 배려와 도움으로 다시 기회를 얻은 만큼 다시 잃지 않고 타의 모범이 되도록 그라운드에서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