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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비난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차 전 감독은 평소 좀처럼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는 캐릭터로 알려져있다. 그랬던 그가 27일(한국시각) 러시아월드컵 한국-독일전을 앞두고 현지에서 취재진을 만나 한국 축구를 대하는 문화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경기도 하기 전에 선수들은 엄청난 비난에 휩싸인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처럼 시작하기도 전에 욕을 먹고 기죽었던 팀이 어디 있나. 경기에 관한 비판이라면 수용할 수 있지만 많은 이는 선수의 사생활과 가족을 들춰가면서 비난을 퍼부었다."
이어 그는 "대표팀 선수들은 노리개가 아니다. 누구도 가족까지 거론하면서 비난할 권리는 없다"면서 "이제는 축구대표팀에 용기와 격려를 주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을 지적이었다.
한국이 러시아월드컵 개막전을 치르기 전 '댓글 월드컵'에서는 '한국은 어차피 16강 탈락할 것인데 관심도 없다. 하거나, 말거나…'라는 조롱이 대세였다. 심지어 '상대팀을 응원하겠다'는 주장이 '엄지척'을 대거 받기도 했다.
한데 스웨덴과의 1차전을 치르고 나니 익명 속 축구팬들은 가면을 바꿔 썼다. 그토록 한국의 월드컵에 관심도 없다던 팬들은 온데간데 없고 언제 그렇게 관심 많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축구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폭발적인지 몰랐다. 그런데 축구 자체보다 욕하는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라며 씁쓸해 했다. 그랬다. 댓글 광장은 '분풀이 하수구'가 됐다. 경기 중 실수한 선수는 어김없이 '역적'이 됐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터무니 없는 청원 요구가 줄을 잇기도 했다. '쓰레기 말 장난'은 수훈 선수도 가만 두지 않았다. 골키퍼 조현우와 가족을 향한 인격 침해성 반응이 나오자 그의 아내는 개인 SNS 계정 게시물을 삭제해야 했다.
독일전을 전후해서는 특유의 '냄비근성'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경기 전엔 가뭄에 콩나듯 했던 '끝까지 대표팀을 격려하자'는 댓글이 극적인 승리 후에 대세 여론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익명의 음지에 숨어 욕설 글쓰기에 몰두했던 '손 축구팬'들과 달리 양지의 광장으로 달려나온 '발 축구팬'들은 달랐다. 광화문앞, 영동대로, 신촌 등 전국 각지 광장에서 함께 땀을 흘렸던 대다수 축구팬들은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이 승패를 떠나 기죽지 말고 끝까지 투혼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국가대표 출신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누가 썼는지 모르는 글이라 해도 염치는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3패할 것이라고 저주했던 분들은 독일전을 보고 나서 무슨 말을 썼을까요?"
이제 한국 축구는 새로운 4년을 준비해야 한다. 협회와 대표팀만 변화할 게 아니라 한국 축구를 대하는 문화도 함께 보조를 맞춰야 성공률이 높다. "이제 한국 사회도 바뀌지 않았나"라는 차 전 감독의 호소가 그래서 더욱 사무친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