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SC칸 인터뷰]"15년 무명인 내가 칸 진출"…유태오에게 다가온 '레토'라는 기적(종합)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8-05-13 23:01



[스포츠조선 칸(프랑스)=이승미 기자]"'레토'는 제 인생을 바꿨어요" 15년간 무명 배우의 길을 걸었던 배우 유태오는 프랑스 칸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내 감격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신작 '버닝'(경쟁부문 초청)의 유아인·스티븐 연, 윤종빈 감독의 '공작'(비경쟁부문 초청)의 주역 황정민·이성민·주지훈 등 제71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혹은 앞으로 밟은 한국 스타들, 그리고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국내 배우가 주연을 맡아 당당히 칸 영화제에 진출한 배우가 눈길을 끈다.

그는 바로 '버닝'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하게 될 경쟁부문 진출작, '러시아의 박찬욱'이라고 불리는 거장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연출작 '레토'에서 러시아의 국민 영웅 빅토르 최를 연기한 배우 유태오(37)다.

독일 교포 출신인 유태오는 2009년 영화 '여배우들'로 데뷔, 이후 한국뿐 아니라 태국, 베트남, 중국, 헐리우드 영화들에 연이어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2015년에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 니콜라스 홀트 주연의 SF 헐리우드 영화 '이퀄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2000:1의 경쟁을 뚫고 빅토르 최 역할에 캐스팅되며 출연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공식 상영회 이후 해외 유수의 매체로부터 빅토르 최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살려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유태오는 지난 9일 진행된 공식 스크리닝에 앞서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게 된 소감을 묻자 "너무 좋다"며 아직도 그때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난 15년 동안 무명의 배우의 길을 밟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주목을 받고 있다. 시차 적응도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바쁜 것도 좋고 너무 행복하다. 정말 꿈같은 자리다. 칸이라는 무대가 운동선수로 치면 올림픽 같은 거 아닌가. 경쟁 부문이라는게 결승전 까지 온 것과 마찬가지인데, 너무너무 행복하고 기쁘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무명 배우였던 그는 어떻게 러시아의 거장 감독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됐을까. 그는 마치 '운명' 같았던 캐스팅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 교포 출신인 박루슬란 감독님이 연출한 '하나안'(2009)이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감독님께 직접 연락을 드려서 친하게 지내게 됐다. 그러던 중 작년 5월쯤 박루슬란 감독님에 내게 '러시아의 박찬욱 감독님이라 불리는 키릴 감독님이 빅토르 최의 영화를 준비중이니 빅토르 최 역을 맡을 만한 20대 초반 한국 배우 할만한 배우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더라. 사실 내가 그 역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가 너의 사진도 한번 보내 보라고 권유했고, 핸드폰을 찍은 셀카 사진을 감독님께 보냈다.
그 후 일주일 뒤 러시아에서 기타치는 영상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주차장에서 찍어 보냈다. 그리고는 모스크바에 오디션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얼떨떨했다. 영화 준비한지 6개월 정도로 된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배우를 구하지 못한거라면 나도 가능성이 있을까 싶어서 빅토르 최에 대한 해석이나 감수성에 대해서 철저히 준비하고 오디션을 받았다. 딱 24시간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4시간 동안 오디션을 봤다. 인터뷰가 끝나고 PD님이 공항으로 데려다주셨는데 '니가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때 감독님이 저를 보고 'This is it!'이라고 하셨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키릴 감독은 왜 무명의 배우 유태오에게 '빅토르 최'를 맡겼을까. 그는 "감독님이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었다고 하더라. 첫 번째는 한국 사람이여야 할 것. 두 번째는 어려보여야 할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연기를 할 수 있어야 할 것. 연기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거였다"고 말했다.

"오디션 당시 감독님께서 빅토르 최에 대한 제 해석이 마음에 드셨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는 남성의 상징, 변화의 상징, 마초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본 빅토르 최는 달랐다. 그의 옛날 음악을 해석보면 굉장히 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까 화가도 꿈꿨다고 하더라. 혼란과 멜랑꼴리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말씀드렸는데 감독님도 그 해석이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
이어 그는 당시 그 빅토르 최의 해석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독일 교포 출신인 그는 "저도 어렸을 때 정체성에 관한 혼란과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한 멜랑꼴리, 나의 뿌리에 관한 질문들을 늘 느끼고 던지며 살았다. 그리고 한국인 출신의 유러피안의 믹스가 많지 않은데 유라시안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저와 빅토르최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감독님께 말씀드렸던 거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랫동안 무명생활을 보낸 유태오. 그는 칸 레드카펫을 밟게 되기까지 "포기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솔직히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아내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때, 나를 유일하게 믿어준 사람이 바로 아내다. 아내 덕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잇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5년 이라는 무명생활을 끝내고 자신을 전 세계에 알려준 '레토'에 대해 유태오는 "제 인생을 바꿔준 작품이다"고 말했다. 이어 "저와 비슷한 삶을 산 빅토르 최와 전 운명이었던 것도 같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면서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레토'는 1990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구소련의 전설적인 록 가수이자 저항의 상징이자 아직까지도 러시아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한국계 가수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그렸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오는 미국과 영국에서 연기 공부를 한 한국 배우 유태오가 빅토르 최 역을 맡았으며 이리나 스타르셴바움, 로만 빌릭 등이 출연한다. 6월 초 러시아에서 개봉 되며 한국에도 수입될 예정이다.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AFPBBNews = News1,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레토' 포스터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