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절친' 30여명 만을 초대해 치른 스몰웨딩. 언론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않았다. 그림 같은 결혼식보다는 '한비야 답게' 작지만 의미있는 자리로 평생의 연을 맺었다. 한비야는 22일 스포츠조선에 "엉덩이에서 불이 난다"며 웃었다. 신혼의 단꿈보다는 박사과정 논문 작성에 열중하느라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그의 말 역시 한비야 다웠다.
한비야와 남편의 첫 만남은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비야는 "남편과는 2002년 겨울, 아프가니스탄 북부 헤라트의 긴급구호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중동지역 전체 팀장이었고, 나는 '햇병아리'였다. '보스의 보스'였으니 꽤 높은 분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치 '면도칼'처럼 매우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었다. 남편이 된 지금은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당시 잠시의 실수로 몇 만명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직책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열정과 프로정신이 강했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
'천생연분' 이라는 기자의 말에 크게 웃은 한비야. 인연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결정적으로 안토니우스와 나를 '부부'로 맺어 준 것은 UN이었다"며 "2012년, UN 자문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 뉴욕과 제네바에서 회의를 많이 했는데, 마침 안토니우스가 국제기구 디렉터로서 제네바에서 근무 중 이었다. 자연스럽게 6개월에 한번씩 그를 만나게 됐다"며 "하루는 안토니우스가 '이 분야는 점점 더 프로페셔널해 진다'며 석사 학위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한비야는 멘토의 조언을 따랐고, 터프츠 대학(Tufts Unibersity의 플래쳐 스쿨 (Fletcher School)에서 인도적 지원에 관한(Master of Arts in Humanitarian Assistance) 석사 학위를 얻었다.
|
부부는 당분간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지낼 예정이다. 긴급구호 전문가인 두 사람은 최근의 남북 관계와 관련해 북한에서 국제 사회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면 한걸음에 달려갈 계획. '바람의 딸'은 '남편의 국제적 지식과, 나의 한국적 감각'을 보태어 실질적인 북한 지원 사업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비야는 "20~30대에 만나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전통적인 모습의 가정이라면, 나와 남편은 60이 넘은 나이에 만났다. 남편과 함께 책을 쓰려고 하는데, 제목은 '환승역에서'라고 정해뒀다"며 "현장에서 서로의 '베스트'뿐 아니라 '워스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았음에도 좋은 친구사이가 된 우리는 '진정한 친구'다. 앞으로 30년동안 '짭짤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유명해지기'보다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계속 공부 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
2009년 한국대학신문과 캠퍼스라이프가 전국 200여개 4년제 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1년 코이카 자문위원을 거쳐 현재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ssale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