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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보장 안 하면…" 투자사 甲질에 피멍든 공연계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7-08-25 11:10


◇국내 공연계가 '원금보장 투자' 등 기형적인 제작 관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김수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최 진 대표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공연계가 뒤숭숭하다. '김수로 프로젝트' 20편을 올리면서 앉게 된 천문학적인 적자가 비극의 씨앗이었다. 지난해에는 '연극열전'을 기획·제작한 홍기유 대표가 경영난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뿐 아니다. 지난 7월엔 뮤지컬 '햄릿'이 출연료 미지급으로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엠뮤지컬아트는 지난해 11월 '록키', 올해 2월 '신데렐라'를 제작 중단했고,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다. 좀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역시 출연료 체불로 공연 취소라는 파행을 빚었고 제작자는 미국으로 도피해버렸다.

공연계에선 왜 이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일까.

원금 보장 안 하면 투자 NO!

공연계에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관행'이 하나 있다. 바로 '원금 보장 투자'다.

한 투자사가 제작비 50억원 규모의 뮤지컬에 5억원을 투자한다고 치자. 대다수 투자사들은 원금보장을 요구하고 상시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는 제작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받아들인다. 대개 인터파크나 예스24와 같은 공신력있는 티켓사이트들을 통해 판매된 티켓 금액에서 선(先)회수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공연이 흥행에 성공해 수익이 발생하면 수익지분도 챙겨간다. 이에 대해 한 전직 투자사 간부는 "공연계는 불확실성이 많고, 수익 자체가 크지 않고, 재무구조도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관행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찌됐건 투자사들은 확실한 안전장치를 보장받고 수익까지 얻을 수 있는 반면 제작사들은 거의 '바보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정부자금으로 운용하는 모태펀드조차도 이런 원금 보장을 요구한다. 공연제작사는 을(乙)도 아닌 병(丙)에 가깝다. 한 영화 제작자는 "그 얘기가 실화냐? 충무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깜짝 놀라면서 "그건 투자가 아니라 고리대금업 아니냐"고 반문했다.


배우들의 몸값 상승

원금 보장 투자는 또다른 도미노를 일으킨다. 배우들의 개런티 상승이다.

투자사들은 작품의 질이나 예술성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오로지 '누가 출연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돌 스타나 TV와 영화를 통해 인지도가 있는 연예계 스타, 아니면 속칭 '티켓파워'가 있는 특A급 배우들을 원한다. 투자사들은 "○○○을 캐스팅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제작사는 배우 소속사를 찾아가 읍소해야 한다. 배우들의 회당 출연료가 오를 수 밖에 없다. 요즘 뮤지컬 남자 주연급들의 출연료는 회당 1000만~2000만원이다.

대형 뮤지컬의 경우, 10년 전만 하더라도 총 제작비의 15% 안팎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개 30%를 웃돈다. 심지어 40%가 넘는 작품도 있다. 대학로 소극장 작품들도 10년 전엔 6개월 공연에 2억~3억원이 들었으나 요즘엔 5억~6억원이 필요하다.

제작사들 입장에선 죽을 맛이다. 투자받은 돈은 원금 보장하고, 출연료는 가파르게 오르고, 라이선스 작품은 로열티(10~12%)까지 내야하고…, 이것 말고도 티켓사이트 수수료, 홍보대행료, 부가세 등을 내고 나면 장부상 흑자가 나도 주머니엔 돈이 없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다보니 한 번 공연을 올려 실패하면 갚을 방법이 없게 된다. 서둘러 다음 작품을 준비해 앞의 부채를 감당하는 '돌려막기'의 악순환에 빠진다. 공연취소 사태도 이런 맥락이다. 공연을 올렸는데 티켓이 기대보다 많이 팔리지 않으면 투자사들은 약속한 투자금의 집행을 늦춘다. 조연급과 코러스들은 출연료를 못받게 되고 팬들은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제작사들의 원죄?

한국뮤지컬시장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공연 이후 급속하게 팽창했다. 제작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과정에서 스타마케팅과 '원금보장 투자'가 자리를 잡았다. 원금보장 투자라는 비상식적인 관행을 수용한 것도, 배우들의 몸값을 올려준 것도 따지고보면 다 제작자들이다.

한 관계자는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면서 "책임을 절감하기에 이제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해야할 때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공연계는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다"면서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모두가 공멸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자본주의 논리만 따지지 말고 상생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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