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서른세번째 주인공은 뛰어난 감각으로 여성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남자, 디자이너 윤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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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오후, 한남동에 위치한 YCH의 쇼룸에서 그를 만났다. 아름다운 정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넓은 창과 윤춘호 디자이너가 만든 아름다운 옷들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마음을 동하게 했다. '여성보다 그들을 더욱 잘 아는 남자 디자이너'라는 그의 수식어를 실감했던 순간, 그와 그가 꿈꾸는 옷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이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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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글래머러스한 여성'을 컨셉으로 잡았다. 왜 하필 80년대인가.
윤: 지금 전세계 트렌드이기도 하고 또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해서 80년대에 애착이 있는 것 같다. 그 시절에 대한 그런 향수 같은 게 기억에 강하게 남아서 그런 것 같다. 가수 중에 장덕이라는 분을 좋아하는데 그분의 노래를 차에 틀어놓으면 사람들이 "라디오야? 너 뭐야. 몇 년생이야?"한다. 실제로 저 자체가 현대적인 것보단 예전 시대의 그런 감성과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아름다운 실루엣이 인상적이었던 쇼다.
윤: 전에는 그냥 날리는 느낌의 옷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모양을 좀 잡아가고 있다. 80년대가 실루엣을 빼곤 얘기할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하고. 어떤 분은 "시즌마다 기본적인 건 유지하되 조금씩 새롭게 바뀌어서 재밌다"고 하시더라. 제가 만드는 옷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특유의 비슷비슷한 느낌이 나오는데, 조금씩 바꿔 가는 것들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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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어떻게 보면 정말 고마운 부분이다. 초대하고 또 오는 게 사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분들은 이 쇼와 행사를 보러 오기 위해 아침부터 팀이 다 움직이고 브랜드 의상에 맞게 헤어 메이크업까지 다 맞추고 오시는 거다. 보통 번거롭지 않은 일인데, 매번 입고 와주시는 거 보면 감사하다.
-김성령부터 오연서, 티파니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저희랑 이미지가 잘 맞는 분들이나 정말 브랜드를 좋아해서 오시는 분들이 계신데, 정말 감사하다. 티파니 씨도 매번 찾아주시고 김성령 씨의 경우에는 제가 팬이어서 초대했다. 오연서 씨는 저희 쇼만 오셨는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감사하다.
-보그의 몇 안되는 드론 쇼로도 화제가 됐었다. 주위 반응은 어떤가.
윤: 드론은 제가 하는 게 아니었다(웃음) 쇼 반응은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좋았던 것 같다. 바이어나 기자분들도 예전보다 옷이 고급스러워진 것 같고, 좀 더 탄탄해진 느낌이 든다고 해주시더라. 사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옷이나 브랜드보다는 가십이라든지 저한테 포커스가 맞춰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옷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할 수 있었던 시즌이라 의미가 있다.
-아르케의 쇼가 돌연 취소된 이후, 정말 빠르고 완성도 있게 YCH가 짠 하고 나왔다. 전혀 타격 없어 보였다.
윤: 사실 그때는 진짜 일이 하나도 없었고, 그 쇼만 하면 됐었기에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해 한 달 정도 준비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들이 다 다른 업무들을 봐야 하고, 일들이 중복되고. 사실 그땐 전화 한 통화 오는 데도 없었고 그저 그냥 직원들끼리 준비 잘하자는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지금은 기간은 더 많이 쓸 수 있겠지만, 바쁜 일들이 많다 보니 온전히 컬렉션만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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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그냥 항상 똑같은 것 같다. 추구하는 건 클래식하고 모던하면서 페미닌한 느낌의 브랜드다.
-특유의 페미닌함이 매력이다. 여자들의 입고 싶은 이상적인 옷인데 또 입을 만하다.
윤: 사실 미적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순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정관념 중 하나가 특이하고 좀 난해한 옷에 대해서 크리에이티브 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러나 제가 가끔 보면 창의적이라기보다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옷들이 있다. 제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건 생각하는 건 옷 자체는 예뻐야 하는 건 맞고, 그저 예쁜 옷이라고 해서 그게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옷은 사람이 입었을 때 예뻐야 한다는 것. 그게 왜곡되거나 변형되어도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런 게 좋더라.
-여자 옷을 잘 만드는 남자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는 어떤가.
윤: 그 말 별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웃음).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다.
-여성복 전문 남자 디자이너로서,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윤: 사실 여성복도 저 스스로가 피팅이 안되다 보니 직원들이나 주위 여성들한테 계속 묻고 의견을 듣는다. 입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 그런 것들을 제가 100% 다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제가 봤을 땐 어깨가 괜찮아 보여도 입는 사람들이 느낄 때는 넓어 보일 수 있더라. 남자라 아무래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많이 얘기를 들어야 한다.
-원래부터 여성복을 하려고 마음먹었었나.
윤: 사실 원래 패션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공대를 나왔다. 패션을 하려고 보니, 보통 한국에 커리큘럼 자체가 남성복 위주인 곳이 많이 없다. 그래서 여성복만 배웠다 어쩌다가. 또 당연히 패션 하면 여성복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패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의 고정관념인지, 디자이너와 옷 하면 그저 앙드레김만 생각났다. 드레스를 하고 여성복을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공대에서, 변하게 된 계기?
윤: 미술을 해서 디자인 계열을 가든 순수미술 쪽을 가든 그쪽 방향으로 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수능점수 맞춰서 패션 디자인학과에 가게 됐다. 그때는 정말 공부하듯이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외국 브랜드나 디자이너 이름도 부러 외우고, 그게 다른 패션에 관심 있는 아이들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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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하고 싶은 생각은 따로 없다. 또 다들 주위에서 말리더라 하지 말라고. 그래서 컬렉션 사이사이에 제가 해보고 싶은 남성복을 해보고 있다. 쇼에서도 여성복만 하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남자 모델들을 간혹 세운다.
-YCH, 그리고 세컨브랜드 스모어 그리고 가방브랜드 UNDER82까지 세 브랜드를 이끈다.
윤: 스모어와 YCH의 제일 큰 차이는 에이지 타켓이 다른 거다. 스모어(S'MORE)는 사실 고민을 안 한다면 이상하지만 디자인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좀 더 새로운 작업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UNDER82는 제가 지은 건 아닌데 한국의 국가 번호 82에서 네이밍을 해봤다. 잘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YCH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들려달라.
윤: 세 시즌을 끝낸 지금부터는 옷의 퀄리티라던지, 이런 기본적인 것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이게 사실 브랜드가 시즌이 가면 갈수록 더욱 저가의 형태로 대중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것과는 반대로 가고 싶다. 그냥 1차원적으로 얘기했을 때, 시장규모로 3, 4만 원 대의 티셔츠를 팔고 싶은 브랜드는 아니다. 그건 세컨 브랜드 스모어를 통해 대중적이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창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YCH는 조금 더 위로, 하이엔드 느낌으로 가져가고 싶다. 그래서 한국의 시장, 한국의 여성들에 한정시켜 옷을 만들지는 않는다. 보통 의상의 노출 부담에 대해 신경 써야 하고 타이트한 옷을 꺼리고, 국내 시장에는 이런 디자인적인 제약이 많다. 그런 고민을 제외하다 보니 옷을 만드는 데 조금은 자유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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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지금은 제가 해외 시장에 대해 직접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간 패션위크 때에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다른 해외 세일즈를 생각을 하고 했던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컬렉션 끝난 후 아시아권에서 이루어졌다. 들어가고 싶었던 레인 크로포드 같은 경우에는 들어갔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새로운 국가들에 관심이 많다.동남아 그런 부분 플러스 유럽과 미국 쪽으로 다음 시즌 겨냥해보려 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컨셉이나 그리고 있는 옷이 있나.
윤: 꾸띄르까진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여성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 예전에는 그런 선생님들 계시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다 비슷비슷하게 하니까. 사실 할 수 있지만 항상 핑계는 시간이 없어서다(웃음). 노력해서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윤춘호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요즘 트렌드를 들려달라.
윤: 사실 트렌드라는게 예전에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게 중요했다면, 요즘은 자기만족에 대한 부분이 커졌다. 집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것도 사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그릇을 사고, 그런 느낌들이 인테리어 소품을 구매해 다른 이와 공유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취향을 갖게 되는 것. 그게 트렌드인 것 같다. 개개인의 취향대로 표현할 수 있는...
gina1004@sportschosun.com, 사진=이새 기자 06sej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