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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3학년에 데뷔, 결혼하고 애 낳고...
[스포츠조선 박현택 기자] 나이를 듣고 놀랐다. 만 49세. 라디오 경력만 27년임을 감안하면, '생갭다' 적은 나이.
최유라는 1990년 '깊은 밤 짧은 얘기'(MBC)로 라디오에 데뷔해 자기 인생 반 이상의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냈다. 95년부터 22년 동안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이끌며 대중과 함께 한 그는 '국민DJ', '라디오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불린다.
초대 진행자로 호흡을 맞춘 故이종환 이후, 이윤철, 전유성, 이재용, 조영남, 박수홍까지 수 많은 '낮의 남편'들이 거쳐가는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대학 졸업반이 된 2017년, 최유라는 어느날 홀연히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애청자, 중에서도 특히 운수업·수송업 종사자들은 '난리'가 났다. '결사 반대'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고, '황혼 이혼'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도 있었다. 한 택시 운전자는 "이제부터 4시에 밥을 먹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4시는 '지금은 라디오시대'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최유라는 "제가 너무 조용했나요"라며 웃었다. 국민예능 '무한도전'이 정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듯, 더 발전된 모습을 위해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는 국민DJ 최유라. 그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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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도 아직까지 하차 소식을 못 믿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문자가 오네요. MBC에서는 '안식년'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사실은 크게 당황하셨어요. 제가 하차 의사를 전달하니, '프로그램 폐지해야 하는거냐, 우리는 어떻게 하나'라는 반응이셨죠. 죄송했지만, 저처럼 오래 한 사람이 하차를 결심했을 때, 오래전부터 (제작진에)예고하고, 화려하게 나오려고 하면, 나오지 못해요. 무게있는 결정을 내린 것인데, 화려하게 나오고 싶지는 않았지요. 조용하고 담담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무슨 (안좋은)일이 있어서 하차한게 아닌가'라는 말이 돌기도 할만큼, 갑작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어요. (웃음) 라디오를 30년 이상 했지만, 예를들어 출연료 문제로 방송사와 씨름을 하거나,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의 경우는 한번도 없었어요. 실은 제가 얼마 받는지도 잘 몰랐어요. 아마 30년씩 일한 DJ들의 특징일거예요. 배철수님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돈 보다 라디오가 좋고, 라디오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은퇴'가 아니라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돌아 가야지요."
결정적인 하차 계기가 있을까요.
"라디오는 제 혼자 힘만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언제나 둘이였죠. 파트너에게도 애정을 갖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조영남님은 제게 '낮에 만나는 부인'이라고 말한 적도 있고요. 실은 조영남님 까지 나가시고 나서는, 크게 힘이 빠진 게 사실입니다. 그 후론 어느순간 제가 청취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애를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항상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더 진하게 소통하고 싶은데, 파트너가 계속 바뀌면서 지키고 있기가 고단했어요. 그래서 '잠깐 STOP 해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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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종환 선생님, 황인용, 조영남, 서세원님 까지 ('지금은 라디오시대' 이전의 '100분쇼')돌이켜보면, 파트너들이 참 버거운 상대들이었어요. (웃음). 물론 사회적으로 이슈를 남기시기도 했지만, DJ 파트너로서는 제게 모두 '황금'같은 분들이었죠. 저는 그분들의 '단물'을 빼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재능있고 실력 갖춘 분들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하며 참 호강하면서 방송한 여자 DJ이지요. 그래서 '모시고 방송하는'게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웃음). 나중에는 농담삼아 "나도 젊은 남자 DJ랑 진행하고 싶어"라고 푸념하기도 했고요. (웃음)조영남 아저씨 떠나시고, 저도 나이가 들다보니 지금 쉬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초대 진행자, 아쉬움이 크실텐데요.
"대학교 3학년때 시작했어요. 그 안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어요, 라디오는 제게 친정엄마 같아요. 지난 시간이 한 여름밤의 꿈 같군요. 사실 하차 이후에는 독한 마음으로 라디오를 한번도 듣지 않았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봐, 아쉬움에 가슴 아플까봐. 어떤 기사님이 '이제 4시에 밥먹으러 가야겠네'라고 하셨어요.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입니다. 죄송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마음을 접고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다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지요."
최유라의 목소리와 웃음은 독보적입니다. 사연을 읽는 연기력과 실력도 최고로 평가받고요.
"감사합니다. 재능이나 연습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제가 늘 진심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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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라디오만 걱정하고 사냐'하시곤 했어요. 그런데 전 늘 '안돼 '지금은 라디오시대'는 무조건 생방이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드라마 등 TV활동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죠. 라디오만 해도 사랑받는다는 자부심과 감사함도 있었고요."
복귀계획은 언제쯤으로 세우고 계시는지.
"전혀 없어요.(웃음) 쉬어야지요. 저도 '4시'가 생겼어요. 이제 4시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서 밥도 먹고, 시장도 가요. 목욕탕도 가고요. 지인이 '몇시에 볼래?' 라고 물어오면 '4시에 보자'라고 말하며 웃곤 해요."
애청자들에 한마디.
"라디오와 30년을 살면서, 내가 바친 열정만큼 사랑을 독보적으로 받았습니다. 제가 이제 아이들이 대학졸업반입니다. 아이들의 졸업식은,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식이지만 '푹 쉬겠다'라기보다 빨리 돌아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해요. 더 발전된 모습, 더 진화된 모습으로 다시 라디오로 돌아가겠습니다."
ssale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