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별들을 위해 스포츠조선 기자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밀려드는 촬영 스케줄, 쏟아지는 행사로 눈코 뜰 새 없는 스타를 위해 직접 현장을 습격, 잠시나마 숨 돌릴 수 있는 안식처를 선사했습니다. 현장 분위기 속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스포츠조선의 '출장토크'. 이번 주인공은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건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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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이 말을 들은 것은 며칠 전 늦은 밤, 김건모의 작업실 테이블에서였다. 20일 방송된 '미운우리새끼'에서 김건모가 홀로 게임을 하며 냉면을 먹던 바로 그 테이블이다. 물론 인터뷰 당시는 방송 전이었기에 몰랐지만, 그럼에도 '국민 가수'의 작업실을 방문한다는 것은 충분히 감격적이었다.
고백컨대 기자들이 김건모의 작업실을 방문한 것 또한 '운'이었다. 김건모를 인터뷰 타깃으로 정한 기자들은 어느 밤 마포구의 한 연습실을 급습했다. 출장토크의 트레이드마크는 물론 언제 어디서나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구비한 캠핑카이긴 하지만, 인터뷰 장소가 명확했던 이날은 맨몸으로 연습실에 돌진했다. 그런데 아뿔싸! 연습실이 정해진 사용시간이 있다는 것은 계산하지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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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는 '판타스틱 듀오' 무대에서 선곡부터 편곡, 반주, 노래까지 모든 것을 마산 설리가 돋보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 김건모는 뒤에서 피아노를 치며 코러스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그 모습은 가히 어떤 가수보다도 빛났다. 참가자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무대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출연했던 그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켰다.
"처음에 출연 섭외를 받고 하려다가 방송을 봤는데 참가자보다 가수가 돋보이는 무대가 많더라. 그래서 안 하려고도 했었다. 이왕 하는거 참가자 위주로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다행히도 반응이 좋더라. 참가자가 돋보여야 하는 방송 아닌가. 나는 내 콘서트에서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 자기 혼자 옷을 잘 차려 입고 아내는 아무거나 입히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건 정말 멋없는거다."
선곡의 기준부터 편곡까지 모든 것은 마산설리를 중심으로 했다. 데뷔 25년차 베테랑 가수인 김건모와 아마추어와 호흡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 서로 세대도 다르고 듣고 자란 음악도 다르다. 그렇게 다른 이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로 하나가 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스승으로서, 선배로서 김건모는 어떨지 궁금하다.
"마산 설리는 참 착실한 아이다. 노래연습도 많이 하고, 성실하더라. 연습할 때도 '넌 크게 될 것'이라는 말을 많인 해준다. 구태여 '노래는 이렇게 하는 거야' 이런 얘기는 잘 안 한다. 지금 그런 말을 한다고 들을 나이도 아니거니와, 만약 프로 가수가 되고 싶다면 더 혹독하게 해야 할거다. 지금은 그저 '다이아나 로스, 나탈리 콜을 많이 들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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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에피소드로 알려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욕을 하거나 누굴 때린게 아니잖나. 그냥 내 입술에 칠 한건데. (원래 유머 섞인 무대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옥수수 하모니카도 다 쓰러진다. 사실 그게 진짜 웃긴거다. 그것도 심장이 강해야하는 것 아닌가. '창피당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하면 못 하는 연출이다. (매니저를 향해) 여기 옥수수 없지?"
그러면서도 '판듀'에서 그런 유머 섞인 무대를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거긴 안돼..."라며 손사래를 쳐 웃음을 자아냈다. 이런 유머에 입담이라면 예능을 안 하는게 손해일 지경이다.
자신을 '한국 가요계 전설'이라고 칭송하는 말에 거부감을 보이며 "전설은 무슨 전설. 나는 필요할 때 찾는 전선"이라며 또 다시 '아재 개그'로 받아 넘기는 김건모. (방심하고 있다 웃음이 터진 기자들에 김건모는 "잊지 못할 것"이라며 고마워 했다) 그럼에도 부정할 길 없이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물론 그것은 결코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항상 준비는 해놓는다. 피아노도 열심히 치고, 자전거도 열심히 타고. 난 따로 제작을 안하잖나. 내 시간이 많으니까 할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저 피아노에 악보가 몇 개 있는지 봤나. 매일 두 시간 이상은 연습을 한다."
피아노 뿐이랴. 인터뷰 내내 목소리가 잠기지 않도록 목을 풀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다른 인터뷰에서는 볼 수 없었기에 인상 깊었다. 이런 노력이 있기에 지금껏 변함없는 특유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얼굴을 다 가리고 자전거를 타도 "비키세요" 한 마디만 하면 다들 알아본다는 김건모. '복면가왕'에는 절대 출연할 수 없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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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판소리 득음을 하는 것 같은 거냐'고 말하자, 김건모는 블루스는 판소리와는 달라서 어느 경지에 올라 단 번에 음을 얻는 것은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블루스는 절대 한 번에 안 된다. 하고 싶어도 못 한다. 내가 '서울의 달'을 마흔이 넘어서 썼다. 그때부턴 좀 되더라. 난 26살에 데뷔했지만 음악은 19살부터 했으니까, 20년 했더니 좀 되더라. 레이 찰스 들으면서 '이제 한 번 가볼까' 하는 참이다. 그게 이번 신곡에도 반영이 됐다. 8월 올림픽 지나고 9월쯤, 앨범은 아니고 몇 곡 준비 중이다. 블루스 같은 건데, 내 나이의 부모들이 '미안해요' 들었을 때 보다 자라지 않았나. 지금 내 나이에 맞게, 어느 정도 세월을 함께 보낸 부부의 이야기."
고생하는 아내를 향한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 '미안해요'에 이어, 신곡 또한 다시 한 번 많은 부부들의 공감을 살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김건모는 "아직 결혼하고픈 마음은 없다. 얽매이는게 싫은 것 같다. 내가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것도 혼자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라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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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서는 스티비 원더와는 좀 맞지 않다. 일단 너무 고음이기도 하고... 레이 찰스는 예를 들면 트윈폴리오의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이런 느낌이랑 맞더라. 공연을 할거면 스티비 원더를 파야겠지만, 내가 노래를 할거라면 레이 찰스를 파야한다고 느꼈다. 서른이면 몰라도 쉰이잖나. 쉰이 넘으면 다들 트로트를 한다. 근데 나는 피아노를 치면서 '이제 뭐 할까' 보고 있는거다. 이게 대중들한테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문제라서, 기존에 알려진 노래들로 할 계획이다.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이런 노래를 블루스로 하는거지."
사실 이날 김건모의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등장한 이름은 오히려 레이 찰스보다 신승훈일 것 같다. "신승훈은 나와 달리 운동을 잘 안 한다", "신승훈은 집 앞 슈퍼도 화장하고 간다" 등 틈을 노린 깨알 디스로 웃음을 선사했다. '미운우리새끼'에서는 김건모가 소개팅 상대에게 "안녕하세요 신승훈입니다"라고 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가요계 양대산맥이었던 두 사람이기에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판타스틱 듀오'에 신승훈이 출연할 당시 김건모가 꽃을 사서 갈 정도로 둘의 친분은 오래됐다.
"신승훈이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 했을 때 가보니 일본 관계자들이 있었다. 신승훈 없을 때 통역을 이용해서 '한국에는 신승훈만 있는게 아니다. 신승훈은 노래 밖에 못하지만. 나는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한다. 여러분들이 지금 선택을 잘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나중에 보자'라고 했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신승훈이 오더라. 얼른 '신승훈이 최고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들 엄청 웃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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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늘었구나? 하하하. 장난이고, 승훈이 형과 나는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블루스로 갈거고. 텔레비전을 켰는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안 나오고. 딴 배우가 나오기도 한다. 뭐 모든 사람이 한 사람만 좋아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서 채널도 이렇게 많아진거고. 그거랑 비슷한거 같다."
다시 레이 찰스로 돌아와, 김건모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블루스의 매력을 모르는게 아쉽다. 그래서 내가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5년간 매일 자기 전 레이 찰스를 들었다고 한다.
"모르는 노래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모두가 아는 노래를 하면 함께 즐길 수 있다. '조개 껍질 묶어~' 이걸 블루스로 하면서 여기에 같이 박수를 치는 레크레이션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다 따라올거라고 본다. 트윈폴리오 시대로 돌아가는거지. 크리스마스 때 콘서트를 하면 옛날 노래가 통한다.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다. 기대해 달라."
김건모는 블루스를 디즈니 만화 같다고 표현했다. 혹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같다고도 했다. 그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 같은 그립고도 따뜻한 느낌이다.
"미키 마우스가 휘파람 삑~ 불고 있는 그런 디즈니 만화 같은, 찰리 채플린 영화 같은 노래를 하고 싶다. 아, 너무 멋있지 않나. 찰리 채플린 영화 같은 노래를 몇곡 만들고, 재미있게 살다가 죽고 싶다. 그래서 피아노 연습도 열심히 하고, 음악도 계속 듣는 거다. 내가 음대 갈 것도 아니잖나. 그냥 난, 그런 노래를 할거다."
winter@sportschosun.com, ran613@, 사진=뉴미디어팀 이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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