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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위태로운 삶이 조금씩 숨을 쉬어/ 꺼져가던 꿈은 지금 내 앞에 찬란히 빛나/ 그로 인해 난 날 찾게 됐어/ 그의 믿음 속에/ 그 눈빛에 비친/ 예전의 그 소녀."(마타 하리의 아리아 '예전의 그 소녀' 中)
뮤지컬은 파리 물랭 루즈의 빛나는 댄서였던 마타 하리가 죽기 직전, 파리 교외의 어느 들판에서 절규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왜 스파이가 되었을까,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타 하리'는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난 한 여인의 삶을 추적하면서 인간성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선다. 바로 사랑의 순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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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36곡의 드라마틱한 넘버들을 통해 순수한 사랑을 갈구한 한 여인의 삶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했다. '예전의 그 소녀' '마지막 순간' 등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잭 머피의 노랫말도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그에 앞서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오필영 디자이너의 무대다. 그야말로 넋을 쏙 빼놓는다. 약 30개의 모터를 하나의 콘솔로 제어하는 무대 장치를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세트를 무대 위에 구현했다.
마타 하리 역의 옥주현, 아르망 역의 송창의, 라두 대령 역의 류정한 등 중량급 배우들의 열연 또한 무대를 빛내고 있다.
초연인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너무 설명적인 대사들이 많아 이야기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1막이 그렇다. 임춘길이 맡고 있는 해설자 역의 캐릭터도 어정쩡하다. 해설자 역은 대개 풍자극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캐릭터인데 이 작품 색깔과는 맞지 않아보였다. 그러다보니 마타 하리의 기구한 외면적 삶과 순수한 내면 세계의 대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배우들이 캐릭터잡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하다.
하지만 몇몇 단점에도 EMK 뮤지컬컴퍼니는 제작 능력에 관한 한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다. 당장 브로드웨이에 갖다놔도 손색없는, 세련된 무대를 구현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수많은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만들어온 경험을 이 한 편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창작뮤지컬이 여기까지 왔다.
'마타 하리'는 6월 1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