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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악역도 얼마든지 사랑받을 수 있다. 이해 받지 못할 악행을 일삼는 캐릭터가 배우의 헌신적인 연기 덕분에 인기를 끄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국민 악녀' 연민정처럼 말이다.
'엄마'의 연출자 오경훈 PD는 김재승의 반듯하고 선한 눈빛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를 캐스팅했다. 애초 계획보다 캐릭터의 비중도 더 커졌다. 연출자의 믿음에 김재승은 열연으로 답했다. 극중 인물의 심리상태와 행동 이유에 대해 분석하면서 말투와 분위기 등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감정에 깊이 몰입해 연기하다가 대본에 없는 제스처가 나와서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캐릭터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능 만점자들이 교과서만 봤다고 말하곤 하잖아요. 그 말이 이해가 돼요. 대본에는 정답이 다 있어요. 쉼표, 느낌표, 말줄임표 하나에도 모든 의미가 담겨 있더군요. 대본을 파고들면서 연기를 구상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워요."
김재승은 엄청난 노력파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오로지 대본 분석과 연기 준비에만 몰두한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돌이'라 괜찮다"며 유쾌하게 웃는다. 이렇게나 겸손하고 예의 바른 김재승에게서 그런 광기 어린 연기가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데뷔는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무수히 받았지만 연예계 활동에 무관심했던 평범한 대학생 이재승은 뮤지컬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본 뒤 무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집에 쌓여 있던 명함을 찾아 매니지먼트사에 연락을 했고, 며칠 뒤 시트콤 '논스톱4' 연출자와 미팅을 했다. 종영 한달을 앞두고 전격 투입. '논스톱4'의 시청자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이다.
'논스톱4' 종영 뒤 캐스팅 제의가 쏟아졌다. CF도 찍었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다는 걱정에 연기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일일극을 선택했다. 6~7개월간 연기력은 쌓았지만, 대중의 관심에선 멀어졌다. "5~6년 동안 유망주로 꼽혔지만 뭔가 보여드리진 못했어요. 물거품처럼 사라진 인기에 자괴감을 느꼈죠. 스물여섯 살 이후론 거의 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했어요. 군대 갔다 오고 개인적인 아픔도 겪으며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죠."
드라마 '맨땅에 헤딩', '빌리진 날 봐요', '자매바다', '쾌도 홍길동', '찬란한 유산', '가족의 비밀', '마이 시크릿 호텔'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작은 역할이었다. 주연배우로 발탁됐다가 촬영 직전에 다른 배우로 교체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김재승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올해 서른 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지난 아픔이 연기의 자양분이 된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앞으로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에게 맡겨주는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바람이 하나 있다면, 긴 여운이 남는 이준익 감독님 작품에 한번 출연해보고 싶어요."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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