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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장미' 정준 맞선녀 최미라, 명문대 출신 백수의 '미라클 도전기'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5-03-08 17:42



SBS 방송화면 캡쳐

이 배우 좀 특이하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는데 '백수'였다.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란 웃을 수 없는 수식어. 그저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현상처럼 우리 사회의 미래가 갖혀 있다. 그도 한동안 그 단어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배우 최미라. 그는 어떤 면에서 자발적 백수였다. 평범한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 스펙을 살려 제도권 내에서 안정된 일을 찾을 수 있었을 법한 인재. 하지만 그는 다른 꿈을 꿨다. 운명처럼 배우가 되고 싶었다. 꿈꾸는 자에게 불행은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현실은 잠언처럼 녹록치 않았다. 단단한 벽처럼 응답 없는 사회. 생명 없는 대상과의 반응 없는 싸움은 두드리는 힘을 빠지게 한다. 최미라도 그랬다

"졸업하고 이것 저것 시도란 시도는 다해보면서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결국 어디에도 발 붙이지 못하고 패배감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제도권 삶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노력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마음이 바닥을 칠 때 강정 마을을 찾게 됐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던진 말. 누구에게나 터닝 포인트가 있다. 졸업 후 극단 생활과 '각시탈', '신세기 낭만시대', '찌라시' 등 각종 작품에 짬짬이 얼굴을 비치던 그에게 한가지 제안이 왔다.

대학 때 수강한 언론방송학 수업에서 교수와 제자로 인연을 맺은 허철 감독. 선배이자 선생님인 허 감독은 제주도 강정마을에 십만 권의 책을 배로 실어 기증하는 '강정 책마을 십만 대권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다며 최미라에게 영상 작업을 제안했다. 연기자가 아닌 여행자로 참여한 프로젝트.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미라클 여행기'가 탄생했다. 제주를 포함, 몇 군데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는 지쳐가던 최미라를 각성시켰다. 현실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 출발은 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됐다. '미라클 여행기' 전까지 위축됐던 마음을 추스리고 자신 안의 새로운 발견을 위한 여정에 나섰다. 그 첫 걸음은 드라마 출연이었다. SBS 일일극 '달려라 장미'의 정준 상대역으로 중간 투입된 한유리 역을 노크했다. 소속사 조차 없는 그가 나름 비중있는 배역을 따낼 수 있었을까. 제작진은 그동안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온 그의 열정 속에 가능성을 발견해냈다. 그렇게 최미라는 '백수'란 꼬리표를 떼고 처음으로 드라마 속에서 단역 아닌 준조연급 연기자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최미라가 연기하는 극중 한유리는 오만하리만큼 당당하고 거침 없이 할 말 다하는 부잣집 딸. 극중 악역인 민철(정준 분)을 맞선으로 만난 뒤 서서히 민철 일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주인공 장미(이영아)는 태자(고주원)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라 향후 극 전개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SBS 방송화면 캡쳐
일일 드라마란 생소한 장르를 통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최미라. 현재의 그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아직은 많은 게 신기하고 낯선 것도 있지만 오래 기다렸던 만큼 물만난 고기처럼 즐겁게 임하고 있다. 드라마 단역으로 촬영을 다닐 때도, 단편 영화를 찍을 때도, 다큐 스텝으로 참여했을 때도, '미라클여행기'의 주인공으로 함께 모든 제작과정을 겪을 때도, 그리고 현재 '달려라장미' 드라마 팀에 합류하기까지 과정에서 느낀 것은 이 모든 것이 공동으로 하는 일이라는 점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서 철없던 최미라는 더 크고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백수 탈출까지 그는 물 위에 뜬 오리처럼 물 밑에서 끊임 없이 발을 굴려왔다. "평생 사랑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깨달음이 빨랐다. 중간에 좌절감도 있었지만 여전히 최미라는 "그 길로 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 연극부 생활,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 보컬, 대학교 졸업 후엔 뮤지컬 극단 생활을 했다. 중견 배우 명계남의 연기 교육 기관에서 1년 동안 트레이닝을 받고 다수의 드라마와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극단에서 하루 10시간씩 고된 훈련을 받았고, 오디션을 위해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 아이스하키도 배웠고, 현재는 촬영이 없는 날마다 액션 및 검술을 배우고 있다. 이틀에 한번꼴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일주일에 한두번씩 반드시 공연장을 찾을만큼 그에게 빈 시간은 오직 '배우 되기' 과정으로 꽉 채워져 있다.

"자신의 인생에 부여하는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는 연기자의 길에 대한 운명같은 깨달음. 이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인은 한사코 겸손하게 손사래를 친다. "드라마는 운 좋게 캐스팅됐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우스갯소리로 정말 미라가 컸다며 이제 백수탈출했다고 좋아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미라클여행기'에 나오는 실제 모습과 180도 대비되는 캐릭터라 더 재밌게 연기하고 있다"며 활짝 웃는다.


오래 꿈꿔왔고 그만큼 더 치열하게 고민해왔던 기적 같은 일.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열정은 더 분주해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 하나 하나를 전체적인 맥락 속에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에 맞게 소화하려다보니 대본은 어느새 닳아 너덜해질 정도다. "대본해석력은 감성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상황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은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듯 하다. 이야기가 주는 매력은 참으로 크다. 전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관계들, 인생의 메커니즘을 알아가게 된다. 오랜 기다림을 통해 인생의 여정과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마주했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와 희망을 배웠다. 연기를 통한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과 타인에 대해 공감을 배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정한 진화를 향해가기 위해 나는 연기에 대한 꿈을 평생 놓지 않을 참이다."

"단순히 직업으로서만이 아니라 인생이란 여정 속에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연기를 바라본다"는 최미라. 오랜 기다림 끝에 배우 최미라의 또 다른 '미라클 여행기'가 이제 막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미라클 여행기'의 한 장면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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