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에로틱칵테일] 길거리 헌팅에 대한 몇 가지 단상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09-18 16:43


[에로틱칵테일] 길거리 헌팅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얼마 전 길을 가다가 말 그대로 '헌팅'이라는 걸 받아봤다. 그나마 지금보다 세 배는 뽀얗고 예쁘던 20대 때에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헌팅 경험이 적다 보니, 누군가 곁에서 "안녕하세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나도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네, 안녕하세요" 하고 자연스럽게 맞받아쳤을 정도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하며 그가 쑥스럽게 말문을 텄을 때에야 '아, 이게 기억 속에서 저 멀리 사라져가던 그 헌팅이라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런데 이 남자…… 대한민국 표준 남성 키를 웃도는 178cm 정도 키에, 하얀 와이셔츠 옷발이 사는 넓은 어깨, 딱 깔끔하게 느낄 만큼 짧은 머리하며, 햇볕에 적절히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서글서글한 눈매! 그 동안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던 내 이상형과 너무나 근접한 것이다. 나는 서둘러 가던 길을 멈추고 '이렇게 황송한 일이 벌어지다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 아직 죽지 않았군요' 속으로 외쳤다.

그런데 "죄송한데요, 저쪽에서 지나가는 걸 봤는데 꼭 한 번 말 걸어보고 싶었어요" 하고 그가 말하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지인들이 들려준 헌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헌팅남이 알고 보니 스토커였던 거야. 실시간 문자와 전화질에 나중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회사 앞까지 와서 기다리더라, 결국 전화번호를 바꾸었잖아."

"난 헌팅 성공률 100%야, 헌팅은 잘생긴 애들이 하면 오히려 실패해. 나처럼 딱 평범하고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어야 해. '저 헌팅 처음 해보는 거거든요' 하면서 되게 쑥스러운 척 말하면 여자들이 '이 남자, 나한테 정말 반했나 보다' 하고 확 넘어오거든."

"예전에 진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지나가는 거야. 번호 따고 진짜 설레고 좋았지. 근데 며칠 뒤 만나서 분위기 좋게 술 한잔 하다 보니까 그날 바로 섹스까지 하게 된 거야. 그랬더니 흥미도 떨어지고 믿음도 안 가고.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뒤로 섹스가 땡길 때면 종종 그렇게 헌팅을 하게 되더란 말이지."


"멀쩡한 남자가 연락처 달라고 해서 혹시 해서 알려줬더니 그 남자한테 전화가 오기는커녕 그 뒤로 호스트바에서 스팸문자가 하루에 10통씩 오기 시작하더라."

지인들의 '안 좋은 기억'들을 둘째 치고라도 이 남자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않던가. 내 성격이나 직업, 환경, 장점 등은 하나도 모르면서 내 외모만 보고 접근해온 남자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남녀가 '첫눈에 반한다'는 건 사랑이기보다는 성욕이라고 한다. 본능적으로 성적으로 끌리는 것,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 서로에게 생물학적으로 반응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 남자는 나랑 자고 싶어서 접근했다는 거잖아!

결국 나는 "죄송해요, 약속에 늦어서" 하며 그를 남겨두고 재빨리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만약 그가 나의 이상형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가 평생 기다려온 여자였다면, 그래서 정말 처음으로 헌팅을 시도해봤다면, 우리가 성격도 잘 맞고 속궁합도 정말 잘 맞았다면…… 혹시 나는 '인연'을 놓친 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지금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그냥 연락처 한번 줘볼걸, 시간 내서 커피라도 마셔볼걸, 어떤 사람인지 조금만 더 이야기해볼걸. 아, 이 시대의 로맨스는 진정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