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칵테일] 길거리 헌팅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얼마 전 길을 가다가 말 그대로 '헌팅'이라는 걸 받아봤다. 그나마 지금보다 세 배는 뽀얗고 예쁘던 20대 때에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헌팅 경험이 적다 보니, 누군가 곁에서 "안녕하세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나도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네, 안녕하세요" 하고 자연스럽게 맞받아쳤을 정도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하며 그가 쑥스럽게 말문을 텄을 때에야 '아, 이게 기억 속에서 저 멀리 사라져가던 그 헌팅이라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런데 "죄송한데요, 저쪽에서 지나가는 걸 봤는데 꼭 한 번 말 걸어보고 싶었어요" 하고 그가 말하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지인들이 들려준 헌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난 헌팅 성공률 100%야, 헌팅은 잘생긴 애들이 하면 오히려 실패해. 나처럼 딱 평범하고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어야 해. '저 헌팅 처음 해보는 거거든요' 하면서 되게 쑥스러운 척 말하면 여자들이 '이 남자, 나한테 정말 반했나 보다' 하고 확 넘어오거든."
"예전에 진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지나가는 거야. 번호 따고 진짜 설레고 좋았지. 근데 며칠 뒤 만나서 분위기 좋게 술 한잔 하다 보니까 그날 바로 섹스까지 하게 된 거야. 그랬더니 흥미도 떨어지고 믿음도 안 가고.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뒤로 섹스가 땡길 때면 종종 그렇게 헌팅을 하게 되더란 말이지."
"멀쩡한 남자가 연락처 달라고 해서 혹시 해서 알려줬더니 그 남자한테 전화가 오기는커녕 그 뒤로 호스트바에서 스팸문자가 하루에 10통씩 오기 시작하더라."
지인들의 '안 좋은 기억'들을 둘째 치고라도 이 남자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않던가. 내 성격이나 직업, 환경, 장점 등은 하나도 모르면서 내 외모만 보고 접근해온 남자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남녀가 '첫눈에 반한다'는 건 사랑이기보다는 성욕이라고 한다. 본능적으로 성적으로 끌리는 것,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 서로에게 생물학적으로 반응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 남자는 나랑 자고 싶어서 접근했다는 거잖아!
결국 나는 "죄송해요, 약속에 늦어서" 하며 그를 남겨두고 재빨리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만약 그가 나의 이상형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가 평생 기다려온 여자였다면, 그래서 정말 처음으로 헌팅을 시도해봤다면, 우리가 성격도 잘 맞고 속궁합도 정말 잘 맞았다면…… 혹시 나는 '인연'을 놓친 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지금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그냥 연락처 한번 줘볼걸, 시간 내서 커피라도 마셔볼걸, 어떤 사람인지 조금만 더 이야기해볼걸. 아, 이 시대의 로맨스는 진정 사라져버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