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을 참고 '내공'을 다시 끌어모았다. 조금씩 조금씩.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나"라는 말을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자고로 '고수'의 풍모라는 게 원래 그렇다. 순간의 치욕쯤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힘이 다 쌓이면 그때 수모를 되갚아주면 그만이다. 남자 프로농구 창원 LG의 시즌 막판 초강세에서는 '복수'의 참맛을 아는 고수의 향기가 난다.
반면 모비스는 4연승 도전에 실패한 동시에 리그 단독 선두자리까지 내줬다. 전날까지 모비스는 SK와 승차없이 승률에서 1푼3리 앞서 선두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이날 패배로 오히려 승차가 0.5경기 뒤진 2위로 내려앉았다. 모비스에는 여러모로 뼈아픈 패배가 아닐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LG는 짜릿한 승리다.
경기는 시종일관 팽팽했다. 이날 경기 전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오늘 승패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LG와 우리가 서로 베스트 전력을 갖추고 시즌 처음 맞붙게 된다. 오늘 경기를 통해 향후 플레이오프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챔피언시리즈 파트너였던 LG에 대한 유 감독의 경계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상자가 많아 전력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완전체 LG는 그만큼 위협적인 상대라는 것.
기세는 여기서부터 LG쪽으로 기울었다. 모비스는 라틀리프의 골밑슛을 앞세워 전세 역전을 노렸으나 막판 리바운드를 몇개 놓치며 결국 패배의 쓴잔을 들고 말았다. LG는 제퍼슨이 37득점11리바운드로 승리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종규도 16득점으로 뒤를 받쳤다.
창원=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